
대동여지도 뜻과 특징, 김정호가 목판으로 만든 22첩 지도
대동여지도는 조선 철종 12년(1861)에 김정호가 만든 우리나라 지도로, 목판에 새겨 여러 벌을 찍어 낼 수 있게 한 것이 큰 특징이에요. 사회 시간에 지도의 요소를 배우거나 대동여지도 만든 사람을 묻는 숙제를 할 때, 몇 첩인지와 펼친 크기가 자료마다 조금씩 달라 헷갈리기 쉬워요. 표준국어대사전과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검색,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원문으로 대동여지도 특징과 목판 이야기를 차례로 정리했어요. 배우는 학년도 함께 적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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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쪽 한눈에 정리(대동여지도 뜻, 만든 사람 김정호, 청구도에서 대동여지도까지, 22첩으로 접는 지도의 특징, 목판)
- 2쪽 빈칸 채우기 8문제와 보기
- 3쪽 낱말과 뜻 짝짓기 6문제, 만든 차례와 일어난 차례 맞추기
- 4쪽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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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여지도 뜻
표준국어대사전은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를 「조선 철종 12년(1861)에 김정호가 제작한 우리나라의 대축척 지도」로 풀이해요. 순조 34년(1834)에 김정호가 만든 ‘청구선표도’를 27년 후에 수정·증보한 것이고, 22첩이라고 적어요.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검색은 대동여지도가 조선의 지도 발달에서 정점에 있으면서 고지도의 백미로 평가받는다고 소개해요. 철종 12년(1861)에 처음 찍어 낸 뒤 고종 1년(1864)에 다시 찍었고, 지금 30여 점이 넘는 판본이 국내외에 남아 있다고 해요.
대동여지도 만든 사람, 김정호
표준국어대사전은 김정호(金正浩)를 조선 후기의 지리학자로 풀이하고, 호는 고산자(古山子)라고 적어요. 국가유산청은 김정호를 실학자이자 지리학자로, 오직 지도를 만들고 지리지를 펴내는 데에만 일생을 바친 사람으로 소개해요.
우리역사넷은 김정호가 신분이 낮고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어려서부터 지도에 관심이 많았고, 친구 최한기의 도움으로 여러 지도를 볼 수 있었다고 전해요. ‘옛 산과 함께 사는 산의 자식’이라는 뜻으로 스스로 ‘고산자’라 불러 달라고 했다고 해요. 김정호 혼자 조선 팔도를 다 다닐 수는 없어서, 관리 신헌의 도움으로 궁궐에 있는 지리지들을 살펴보고 미심쩍은 곳은 직접 확인했다고 설명해요.
청구도와 동여도에서 대동여지도로
우리역사넷은 김정호가 처음으로 우리나라 전국의 모습을 담은 『청구도』를 완성했고, 이어 지리지 『동여도지』를 펴낸 뒤 이를 바탕으로 『동여도』를 만들었다고 설명해요. 『동여도』는 도로에 십 리마다 점을 찍어 거리를 알 수 있게 하고, 성이나 창고 등은 기호로 나타냈어요.
『동여도』는 정보가 많아 목판에 새기면 알아보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김정호는 기호를 줄이고 중요하지 않은 지명 5,500여 개를 빼서 훨씬 쉽게 볼 수 있는 대동여지도를 완성했다고 해요. 우리역사넷은 정상기의 〈동국지도〉가 실제 거리를 일정한 비율로 줄여 나타내는 축척을 사용했고, 대동여지도를 만드는 데 바탕이 되었다고도 적어요. 축척과 범례 같은 지도의 요소는 축척 뜻에 정리돼 있어요.
대동여지도 특징, 22첩으로 접는 지도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검색이 설명하는 대동여지도의 특징이에요.
- 전국을 남북으로 22첩으로 나누고, 접었다 펼 수 있는 분첩절첩식으로 만들었어요
- 모두 아래위로 맞추면 남북 약 6.7m, 동서 3.8m의 큰 전국 지도가 되고, 축척은 약 16만분의 1로 알려져 있어요
- 각 첩의 한 면은 동서 80리, 남북 120리를 담아요
- 도로에는 10리마다 방점을 찍어 거리를 잴 수 있게 했어요
- 해안선과 섬, 산과 하천, 고을과 창고, 봉수 등을 실제와 거의 비슷하게 그렸어요
우리역사넷은 대동여지도를 펼치면 대략 세로 7미터, 가로 4미터로 3층 건물 높이와 비슷하다고 설명해요. 사람들은 목적지에 따라 필요한 첩만 뽑아 들고 다녔는데, 강원도 대관령으로 가는 사람은 대관령이 나온 제13첩만 챙기면 됐다고 해요.
대동여지도 목판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검색은 보물 「대동여지도 목판」을 현재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진 12장의 목판 가운데 11장이라고 소개하고,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에 1장이 있다고 적어요. 피나무로 만들었고 앞뒤 양면에 모두 조각되어 있으며, 한 면에 남북 120리, 동서 160리 범위를 새겼어요. 지도 전체를 만드는 데는 약 70장 내외의 목판이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해요.
우리역사넷은 대동여지도 목판을 불태웠다는 이야기가 오랫동안 전해졌지만 역사에 기록된 사실이 아니며, 목판은 계속 보관되어 있었다고 설명해요.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있던 목판이 1995년 10월에 세상에 알려졌고,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대동여지도와 목판을 함께 볼 수 있다고 해요.
대동여지도는 몇 학년에 배우나
2022 개정 사회과 교육과정(교육부 고시 제2022-33호 [별책7])에서 초등학교 3~4학년은 「지도로 만나는 우리 지역」 단원의 [4사05-01] 「우리 지역을 표현한 다양한 종류의 지도를 찾아보고, 지도의 요소를 이해한다」를 배워요. 성취기준 해설은 방위, 기호와 범례, 축척, 높낮이 표현 방식 등 지도 제작에 필요한 요소를 파악하도록 한다고 적어요. 이 교육과정은 초등학교 3, 4학년에 2025년 3월 1일부터 적용됐어요.
5~6학년은 「달라지는 시대, 변화하는 생활 모습」 단원의 [6사05-02]에서 조선 후기 사회⋅문화적 변화를 배워요. 이 교육과정은 초등학교 5, 6학년에 2026년 3월 1일부터 적용됐어요. 방위를 함께 익히려면 방위표 pdf를, 같은 시기 실학자 이야기는 정약용 업적을 참고하세요.
자주 묻는 질문
대동여지도를 다 펼치면 얼마나 큰가요?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검색은 22첩을 함께 합치면 남북 약 6.7m, 동서 3.8m의 대형 지도가 된다고 적어요. 우리역사넷은 대략 세로 7미터, 가로 4미터로 3층 건물 높이와 비슷하다고 설명해요.
대동여지도에는 거리를 어떻게 표시했나요?
국가유산청은 고을과 고을을 잇는 도로에 10리마다 방점을 찍어 고을 사이의 거리를 잴 수 있게 했다고 설명해요. 관아, 창고, 봉수 같은 시설은 기호로 나타냈어요.
대동여지도 목판은 지금도 남아 있나요?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검색은 현재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진 목판 12장 가운데 11장을 보물 「대동여지도 목판」으로 소개하고, 1장은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에 있다고 적어요. 우리역사넷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지도와 목판을 함께 전시한다고 전해요.
📚 자료 출처
본 글은 아래 교육부·국사편찬위원회·국가유산청·국립국어원 공식 원문을 2026년 10월 11일에 직접 확인해 재구성했습니다. 교육과정·법령·기관 자료는 개정·갱신될 수 있으니 최신 고시와 원문을 함께 확인해 주세요.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재미있는 초등역사 「김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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