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 심는 여자, 아프리카 첫 여성 노벨평화상 왕가리 마타이
1977년 6월 5일, 케냐 나이로비의 한 공원에서 여성들이 나무를 심기 시작했어요. 묘목 한 그루당 아주 적은 돈을 받는 일이었습니다. 이 작은 모임이 그린벨트 운동이 되고, 그 일을 시작한 사람은 2004년 아프리카 여성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아요. 왕가리 마타이. 동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를 통틀어 첫 여성 박사였고, 세 아이의 엄마였으며, "여자치고 너무 강하다"는 이유로 이혼을 겪은 사람이었습니다.

케네디 에어리프트를 타고 미국으로
1960년 9월, 그는 케네디 에어리프트라는 장학 프로그램에 선발돼 미국으로 갔어요. 아프리카 학생들을 미국 대학에 보내는 사업이었습니다.
캔자스주의 마운트 세인트 스콜라스티카 칼리지에서 학사, 1966년 피츠버그 대학에서 석사를 받았어요.
케냐로 돌아온 뒤 1971년 나이로비 대학에서 수의해부학 박사 학위를 받습니다.
동·중앙아프리카 최초의 여성 박사
1971년 그는 동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를 통틀어 최초의 여성 박사가 됐어요.
같은 해 12월에 막내딸 완지라가 태어납니다. 아들 와웨루와 무타까지 세 아이의 엄마였어요.
학위와 출산이 같은 해에 있었던 셈입니다.

"여자치고 너무 강하다"
1969년 5월에 결혼한 남편과 1977년 별거하고 1979년 이혼했어요.
이혼 사유로 알려진 말이 남아 있습니다. 그가 "여자치고 너무 강한 성격"이고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었어요.
이혼 뒤 그는 남편의 성을 버리지 않았어요. 대신 철자에 a를 하나 더 붙여 Maathai로 썼습니다. 버리지도, 그대로 두지도 않는 방식이었어요.
묘목 한 그루에 얼마씩
1977년 6월 5일, 나이로비의 카무쿤지 공원에서 첫 나무를 심었어요. 그린벨트 운동의 시작입니다.
방식은 단순했어요. 여성들이 묘목을 심으면 한 그루당 소액을 지급하는 것.
숲을 되살리는 일이면서 동시에 시골 여성들에게 현금 소득을 만들어 주는 일이었어요. 1986년에는 범아프리카 그린벨트 네트워크로 확장됩니다.
감옥과 우후루 공원
그의 활동은 여러 번 충돌을 낳았어요. 1979년에는 법정모독 혐의로 랑가타 여자교도소에서 사흘을 보냈습니다.
1992년 1월에는 자택에서 사흘간 포위된 끝에 체포됐어요.
같은 해 3월 3일 우후루 공원에서 단식농성 중 강제 해산 과정에서 의식을 잃기도 했습니다.

2004년, 아프리카 여성 최초
2004년 그는 노벨평화상을 받았어요. 아프리카 여성으로는 처음이었습니다.
수상 이유는 "지속가능한 발전과 민주주의, 평화에 기여한 공로"였어요. 나무를 심는 일이 평화상의 이유가 된 드문 사례입니다.
2011년 9월 25일 난소암 합병증으로 나이로비에서 세상을 떠났어요.
한 그루씩 심는 방식
그가 한 일은 거대한 계획이 아니라 한 사람이 한 그루씩 심는 일의 반복이었어요.
세 아이를 키우면서, 이혼을 겪으면서, 감옥에 다녀오면서 그 일을 이어 갔습니다.
작은 단위로 오래 하는 일이 결국 어디까지 가는지를 보여 주는 이력이에요.
참고 자료
· Wikipedia 「Wangari Maathai」
· Nobel Prize 「List of female Nobel laure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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