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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계획은 없다 - 서울대 김영민 교수 칼럼

참 좋은 글이라 함께 나누고 싶어 올려 봅니다! 제목: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계획은 없다. 종이 울리고 또 한 해가 시작되었다. 2018년이라는 숫자가 적힌 빤쓰를 입고 다시 인생이라는 사각의 링에 올라야 한다. 셰도우 복싱을 시작하는 머리 위로 스포트라이트처럼 하얀 눈이 쏟아진다. 만화 ‘허니와 클로버’의 주인공은 말했다. “내리는 눈을 올려다보고 있자면, 모래시계 바닥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속절없이 쏟아지는 시간의 눈을 맞으며, 부랴부랴 새해의 계획이라도 세우고 싶어진다. 그러나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목표나 계획 같은 건 없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권투 선수 중 한 사람이었던 마크 타이슨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사람들은 대개 그럴싸한 기대를 가지고 한 해를 시작하지만, 곧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무력하게 무너지는지 곧 깨닫게 된다. 링에 오를 때는 맞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 따라서 나는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계획 같은 건 없다. 행복의 계획은 실로 얼마나 인간에게 큰 불행을 가져다 주는가. 우리가 행복이라는 말을 통해 의미하는 것은 대개 잠시의 쾌감에 가까운 것. 행복이란, 온천물에 들어간 후 10초 같은 것. 그러한 느낌은 오래 지속될 수 없기에, 새해의 계획으로는 적절치 않다.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을 바라다보면, 그 덧없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쉽게 불행해진다. 따라서 나는 차라리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 이를테면 왜 만화 연재가 늦어지는 거지, 왜 디저트가 맛이 없는 거지, 라고 근심하기를 바란다. 내가 이런 근심을 누린다는 것은, 이 근심을 압도할 큰 근심이 없다는 것이며, 따라서 나는 이 작은 근심들을 통해서 내가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세이쇼 나곤(清少納言)은 “겨울은 이른 아침이 좋다. 눈이 내리고 있으면, 그 아름다움이야 이루 말할 나위도 없다. 서리가 새하얗고, 또 그렇지 않더라도 매우 추운 때에, 불을 급히 피워 숯불을 들고 복도를 지나는 것도 계절에 꼭 어울린다”고 말했다. 나는 ‘마쿠라노소시’(枕草子)의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세이쇼 나곤이 느끼는 눈과 숯불의 아름다움보다는, 그 느낌을 가능하게 하는 세이쇼 나곤의 위치를 생각한다. 그는 밤새 떨지 않고 분명 따뜻한 전기장판 속에, 아니 이불 속에서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아침을 맞았겠지. 하지만 애당초 새해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죠? 해가 바뀐다고 우리가 흥분해야 할 이유가 있나요? 검은 옷에 금속 목걸이를 하고 다니던, 그러나 지금은 연락이 끊긴, S양은 이렇게 반문한 적이 있다. 어디선가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새해라는 건 원래 존재하지 않는다고. 과학소설에 나오듯이, 통 속에 든 뇌에다가 어떤 미친 과학자가 새해라는 이름의 자극을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 미친 과학자가 바로 우리 자신일 수도 있다고. 그런 가상현실을 통해서라도 우리 삶에 리듬감을 주는 것이 영장류가 발명한 삶의 지혜일 수 있다고. 1분이 60초라는 것도, 1시간이 60분이라는 것도, 하루가 24시간이라는 것도, 12달이 지나면 한 해가 저문다는 것도, 그리하여 마침내 새로운 해를 맞는다는 의식도 모두 인간이 삶을 견디기 위해 창안해낸 가상현실이다. 인간은 그 가상현실 속에서, 그렇지 않았으면 누릴 수 없었던 질서와 생존의 에너지를 얻는다. 그리하여 나는, 2018년이라는 평행우주에서 야구선수로 살고 있는 또 다른 나를 생각하겠다. 새해에 쏟아져 내리는 눈송이들은, 모래시계 속으로 떨어져 내리는 시간의 입자가 아니라, 살고 싶었으나 끝내 살지 못했던 삶을 대신 살아주는 또 다른 내가 때려 낸 홈런들이라고 생각하겠다. 평행 우주의 펜스를 넘어 온 장외 홈런들이라고 생각하겠다. 이것이 내가 올 한 해를 계획하는 방식이니, 시간이여 또 한 해치를 쏟아 부어라. 그리고 2018년 연말의 나로 하여금 말하게 하라. 올 한 해가 불행하지 않았다고.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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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요조가 동생을 떠나보내고 쓴 글(2009.05 서울예대 학보)

읽으며 눈물이 나네요. 한번씩 읽어봄직하여 공유합니다. 2009년 5월 서울예대 학보에 실린 신수진(요조)의 칼럼. 빛나는 오늘의 발견 빛나는 오늘의 나 하루는 내 동생과 한 이불속에서 밤이 새도록 수다를 떨었다. 당시 그녀는 고3 이었고 나는 스물일곱. 8살 터울이었지만 우리는 서로의 나이차이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수학 성적이 좋아서 이과를 선택한 수현이는 고3이 되었지만 한달인가 지나서 갑자기 사진을 공부하고 싶다고 부모님 속을 엄청 썩이고 결국 사진기를 손에 쥔지 4개월 정도 지났을 때였다. '중앙대에 가고 싶어, 언니. 근데 사진과는 서울캠퍼스가 아니고 지방에 있어서 집에서 통학하기 쉽지 않을텐데 어쩌지?' '그럼 나랑 둘이 따로 나와서 살자. 언니가 얼른 앨범내고 돈 벌고 차 뽑아서 데려다줄게.' '내가 언니랑 따로 산다고 하면 엄마가 퍽이나 좋아하겠다.' '걱정마, 너 사진 공부 하는 것도 내가 우겨서 허락받은건데... 어디쯤에 집을 구하면 니가 학교 다니기에도 내가 홍대 가기에도 편할까?' 다음날 동생은 청량리역으로 사진을 찍으러 다녀오겠다고 말했고 난 만원인가를 쥐어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날 저녁, 그녀는 청량리역에서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내게 꼭 필요한 존재였다. 내가 계란 흰자를 좋아하고 그녀는 계란 노른자를 좋아하기 때문일지도. 아니면 나는 닭가슴살을, 그녀는 닭다리를 좋아해서 치킨을 한마리 시켜도 사이좋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엄마가 밥먹으래'라는 한마디가 하루 중 우리의 유일한 대화일 때도 많았고 내 옷을 말없이 가져가는 것에 미칠듯이 분노하며 엄마가 내 동생을 혼내는 날엔 나 역시 엄마편을 주로 들곤했지만 나에게는 역시 내 동생 뿐이었다. 청량리역에서 사진을 찍던 동생은 이유없이 포크레인에 깔려 즉사했다. 병원에는 경찰도 오고, 포크레인 회사 사람, 철도청 사람, 방송국, 신문 기자들이 왔다. 3일이면 충분한 장례식장에 11일을 머물렀다. 너무나 힘들었다. 하지만 나를 가장 많이 괴롭혔던 것은 엄마가 했던 말이었다. 사진공부를 시키지 않았다면 수현이는 죽지 않았을거야. 밤이 오면 옥상에 올라가 많은 것을 생각했다. 그녀가 죽기 바로 전 날, 새벽까지 우리가 그렸던 내일이 난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중앙대에 갈 수 없고, 사당 근처에서 같이 살 수도 없고 내가 돈을 벌고 차를 뽑아도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집에 돌아와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했다. 엄마는 매일 아침 밥을 지어야 했고 아버지는 매일 아침 출근을 했다. 나는 바로 제주도에서 공연이 생겨 웃는 얼굴로 <바나나 파티>를 불러야 했다.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었다. 나는 계속 '내일'에 대해 생각했다. 누군가 내게 '내일은 뭐해?' 하고 물어오면 '내일? 내가 어떻게 알아. 바로 죽어버릴 수도 있는데.' 하고 이야기했다. 동생을 잃고 나서 얼마간 이루 말할 수 없는 비관론자가 되었다. 죽음은 이제 더이상 나에게 쪼글쪼글 할매가 되어서야 맞게 되는 일이 아니었다. 바로 코앞에서 나를 언제나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로 두렵지도 않았고, 늘 내일 죽을 사람처럼 굴었다. 수중에 있는 돈은 그냥 다 써버렸고, 살찔까봐 조심스러워했던 식성도 과격해졌다. 술도 퍼마시고 담배도 피워댔다. 그렇지만 나는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내일'이라는 것을. 동생뿐이었던 내게 아무렇지 않게 그녀를 홀랑 데려가버렸던 신의 의도를. 죽기전에 우리가 보낸 새벽을. 그녀의 죽음을. 사진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죽지 않았을거라는 엄마의 절규를. 그녀의 죽음을 통해 나는 무언가를 깨달아야했고 그걸로 내 삶이 변화해야 했다. 깨닫지 않고서는 그녀의 죽음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일년 반 정도가 지났다. 그리고 나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내 동생의 죽음의 교훈을 알아 내었다. 그 교훈은 민망할 정도로 너무나 당연해 모두가 간과하고 있던 시시한 진실. 그것은 바로 '빛나는 오늘의 발견'이고 '빛나는 오늘의 나' 였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내가 내 동생을 잃고서야 이해할 수 있었던 것. 오늘에 충실하는 것. 이것이 여러분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다. 나는 여러분이 내일을 위해서 오늘을 고문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여러분이 오늘 먹고 싶은 음식을 먹기를 바라고, 너무 입고 싶어 눈에 밟히는 그 옷을 꼭 사기를 바란다. 나는 여러분이 늘 보고 싶지만 일상에 쫓겨 '다음에 보지 뭐' 하고 넘기곤 하는 그 사람을 바로 오늘 꼭 만나기를 바란다. 나는 여러분이 100만원을 벌면 80만원을 저금하지 않고 50만원만 저금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사고 싶은 옷을 참고 먹고 싶은 음식을 참으며 만나고 싶은 사람을 다음으로 미루는 당신의 오늘에 다 써버리기를 바란다. 나는 당신이 사진을 찍을 때 행복하기를 바란다. 나는 당신이 그림을 그릴 때 행복하길 바라고, 당신이 무대위에서 대사를 읊조리고 동선을 고민할 때 행복하기를 바란다. 이 사진이 사람들의 호응을 살지, 이 그림이 얼마나 비싸게 팔릴지, 당신의 연기를 사람들이 좋게 봐줄지를 고려하기보다 그저 당신이 원해왔던 행위를 하고 있는 바로 지금 이 순간 당신의 행복을 더 우선했으면 한다. 내일 죽어도 좋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당신의 오늘이 완성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오늘 노래하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고, 오늘 수중에 돈이 없을때면 맛있는 라면을 먹고 돈이 많을 때 내가 좋아하는 봉골레 스파게티를 먹는게 행복하다. 사랑하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거나하게 취하고 다음날 눈을 떠 조금 창피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 행복하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2009년 5월 22일 뮤지션으로 살아있는 것이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 '사진공부를 시키지 않았다면 수현이는 죽지 않았을 거야' 하고 이야기했던 엄마는 조금 틀린 것 같다. 수현이는 그 날, 행복했을 것이다. 그렇게 원했던 사진을 그 날도 찍을 수 있어서, 찍고 싶었던 청량리역을 찍고 있어서, 내가 쥐어준 만원으로 맛있는 밥을 먹어서 행복했을 것이다. 얼마전 차안에서 그냥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스피노자가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을 인용하는 것을 듣고 나는 엉엉 울었다. 이제야 이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며 흘린 눈물이었다. 나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내일 모레 공연을 위해 오늘 합주를 할 것이다. 여러분도 그렇게 해주길 바란다. 나는 당신의 오늘이 행복하길 바란다. 당신의 내일같은 건 관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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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계획은 없다 - 서울대 김영민 교수 칼럼

참 좋은 글이라 함께 나누고 싶어 올려 봅니다! 제목: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계획은 없다. 종이 울리고 또 한 해가 시작되었다. 2018년이라는 숫자가 적힌 빤쓰를 입고 다시 인생이라는 사각의 링에 올라야 한다. 셰도우 복싱을 시작하는 머리 위로 스포트라이트처럼 하얀 눈이 쏟아진다. 만화 ‘허니와 클로버’의 주인공은 말했다. “내리는 눈을 올려다보고 있자면, 모래시계 바닥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속절없이 쏟아지는 시간의 눈을 맞으며, 부랴부랴 새해의 계획이라도 세우고 싶어진다. 그러나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목표나 계획 같은 건 없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권투 선수 중 한 사람이었던 마크 타이슨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사람들은 대개 그럴싸한 기대를 가지고 한 해를 시작하지만, 곧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무력하게 무너지는지 곧 깨닫게 된다. 링에 오를 때는 맞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 따라서 나는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계획 같은 건 없다. 행복의 계획은 실로 얼마나 인간에게 큰 불행을 가져다 주는가. 우리가 행복이라는 말을 통해 의미하는 것은 대개 잠시의 쾌감에 가까운 것. 행복이란, 온천물에 들어간 후 10초 같은 것. 그러한 느낌은 오래 지속될 수 없기에, 새해의 계획으로는 적절치 않다.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을 바라다보면, 그 덧없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쉽게 불행해진다. 따라서 나는 차라리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 이를테면 왜 만화 연재가 늦어지는 거지, 왜 디저트가 맛이 없는 거지, 라고 근심하기를 바란다. 내가 이런 근심을 누린다는 것은, 이 근심을 압도할 큰 근심이 없다는 것이며, 따라서 나는 이 작은 근심들을 통해서 내가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세이쇼 나곤(清少納言)은 “겨울은 이른 아침이 좋다. 눈이 내리고 있으면, 그 아름다움이야 이루 말할 나위도 없다. 서리가 새하얗고, 또 그렇지 않더라도 매우 추운 때에, 불을 급히 피워 숯불을 들고 복도를 지나는 것도 계절에 꼭 어울린다”고 말했다. 나는 ‘마쿠라노소시’(枕草子)의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세이쇼 나곤이 느끼는 눈과 숯불의 아름다움보다는, 그 느낌을 가능하게 하는 세이쇼 나곤의 위치를 생각한다. 그는 밤새 떨지 않고 분명 따뜻한 전기장판 속에, 아니 이불 속에서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아침을 맞았겠지. 하지만 애당초 새해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죠? 해가 바뀐다고 우리가 흥분해야 할 이유가 있나요? 검은 옷에 금속 목걸이를 하고 다니던, 그러나 지금은 연락이 끊긴, S양은 이렇게 반문한 적이 있다. 어디선가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새해라는 건 원래 존재하지 않는다고. 과학소설에 나오듯이, 통 속에 든 뇌에다가 어떤 미친 과학자가 새해라는 이름의 자극을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 미친 과학자가 바로 우리 자신일 수도 있다고. 그런 가상현실을 통해서라도 우리 삶에 리듬감을 주는 것이 영장류가 발명한 삶의 지혜일 수 있다고. 1분이 60초라는 것도, 1시간이 60분이라는 것도, 하루가 24시간이라는 것도, 12달이 지나면 한 해가 저문다는 것도, 그리하여 마침내 새로운 해를 맞는다는 의식도 모두 인간이 삶을 견디기 위해 창안해낸 가상현실이다. 인간은 그 가상현실 속에서, 그렇지 않았으면 누릴 수 없었던 질서와 생존의 에너지를 얻는다. 그리하여 나는, 2018년이라는 평행우주에서 야구선수로 살고 있는 또 다른 나를 생각하겠다. 새해에 쏟아져 내리는 눈송이들은, 모래시계 속으로 떨어져 내리는 시간의 입자가 아니라, 살고 싶었으나 끝내 살지 못했던 삶을 대신 살아주는 또 다른 내가 때려 낸 홈런들이라고 생각하겠다. 평행 우주의 펜스를 넘어 온 장외 홈런들이라고 생각하겠다. 이것이 내가 올 한 해를 계획하는 방식이니, 시간이여 또 한 해치를 쏟아 부어라. 그리고 2018년 연말의 나로 하여금 말하게 하라. 올 한 해가 불행하지 않았다고.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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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요조가 동생을 떠나보내고 쓴 글(2009.05 서울예대 학보)

읽으며 눈물이 나네요. 한번씩 읽어봄직하여 공유합니다. 2009년 5월 서울예대 학보에 실린 신수진(요조)의 칼럼. 빛나는 오늘의 발견 빛나는 오늘의 나 하루는 내 동생과 한 이불속에서 밤이 새도록 수다를 떨었다. 당시 그녀는 고3 이었고 나는 스물일곱. 8살 터울이었지만 우리는 서로의 나이차이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수학 성적이 좋아서 이과를 선택한 수현이는 고3이 되었지만 한달인가 지나서 갑자기 사진을 공부하고 싶다고 부모님 속을 엄청 썩이고 결국 사진기를 손에 쥔지 4개월 정도 지났을 때였다. '중앙대에 가고 싶어, 언니. 근데 사진과는 서울캠퍼스가 아니고 지방에 있어서 집에서 통학하기 쉽지 않을텐데 어쩌지?' '그럼 나랑 둘이 따로 나와서 살자. 언니가 얼른 앨범내고 돈 벌고 차 뽑아서 데려다줄게.' '내가 언니랑 따로 산다고 하면 엄마가 퍽이나 좋아하겠다.' '걱정마, 너 사진 공부 하는 것도 내가 우겨서 허락받은건데... 어디쯤에 집을 구하면 니가 학교 다니기에도 내가 홍대 가기에도 편할까?' 다음날 동생은 청량리역으로 사진을 찍으러 다녀오겠다고 말했고 난 만원인가를 쥐어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날 저녁, 그녀는 청량리역에서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내게 꼭 필요한 존재였다. 내가 계란 흰자를 좋아하고 그녀는 계란 노른자를 좋아하기 때문일지도. 아니면 나는 닭가슴살을, 그녀는 닭다리를 좋아해서 치킨을 한마리 시켜도 사이좋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엄마가 밥먹으래'라는 한마디가 하루 중 우리의 유일한 대화일 때도 많았고 내 옷을 말없이 가져가는 것에 미칠듯이 분노하며 엄마가 내 동생을 혼내는 날엔 나 역시 엄마편을 주로 들곤했지만 나에게는 역시 내 동생 뿐이었다. 청량리역에서 사진을 찍던 동생은 이유없이 포크레인에 깔려 즉사했다. 병원에는 경찰도 오고, 포크레인 회사 사람, 철도청 사람, 방송국, 신문 기자들이 왔다. 3일이면 충분한 장례식장에 11일을 머물렀다. 너무나 힘들었다. 하지만 나를 가장 많이 괴롭혔던 것은 엄마가 했던 말이었다. 사진공부를 시키지 않았다면 수현이는 죽지 않았을거야. 밤이 오면 옥상에 올라가 많은 것을 생각했다. 그녀가 죽기 바로 전 날, 새벽까지 우리가 그렸던 내일이 난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중앙대에 갈 수 없고, 사당 근처에서 같이 살 수도 없고 내가 돈을 벌고 차를 뽑아도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집에 돌아와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했다. 엄마는 매일 아침 밥을 지어야 했고 아버지는 매일 아침 출근을 했다. 나는 바로 제주도에서 공연이 생겨 웃는 얼굴로 <바나나 파티>를 불러야 했다.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었다. 나는 계속 '내일'에 대해 생각했다. 누군가 내게 '내일은 뭐해?' 하고 물어오면 '내일? 내가 어떻게 알아. 바로 죽어버릴 수도 있는데.' 하고 이야기했다. 동생을 잃고 나서 얼마간 이루 말할 수 없는 비관론자가 되었다. 죽음은 이제 더이상 나에게 쪼글쪼글 할매가 되어서야 맞게 되는 일이 아니었다. 바로 코앞에서 나를 언제나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로 두렵지도 않았고, 늘 내일 죽을 사람처럼 굴었다. 수중에 있는 돈은 그냥 다 써버렸고, 살찔까봐 조심스러워했던 식성도 과격해졌다. 술도 퍼마시고 담배도 피워댔다. 그렇지만 나는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내일'이라는 것을. 동생뿐이었던 내게 아무렇지 않게 그녀를 홀랑 데려가버렸던 신의 의도를. 죽기전에 우리가 보낸 새벽을. 그녀의 죽음을. 사진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죽지 않았을거라는 엄마의 절규를. 그녀의 죽음을 통해 나는 무언가를 깨달아야했고 그걸로 내 삶이 변화해야 했다. 깨닫지 않고서는 그녀의 죽음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일년 반 정도가 지났다. 그리고 나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내 동생의 죽음의 교훈을 알아 내었다. 그 교훈은 민망할 정도로 너무나 당연해 모두가 간과하고 있던 시시한 진실. 그것은 바로 '빛나는 오늘의 발견'이고 '빛나는 오늘의 나' 였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내가 내 동생을 잃고서야 이해할 수 있었던 것. 오늘에 충실하는 것. 이것이 여러분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다. 나는 여러분이 내일을 위해서 오늘을 고문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여러분이 오늘 먹고 싶은 음식을 먹기를 바라고, 너무 입고 싶어 눈에 밟히는 그 옷을 꼭 사기를 바란다. 나는 여러분이 늘 보고 싶지만 일상에 쫓겨 '다음에 보지 뭐' 하고 넘기곤 하는 그 사람을 바로 오늘 꼭 만나기를 바란다. 나는 여러분이 100만원을 벌면 80만원을 저금하지 않고 50만원만 저금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사고 싶은 옷을 참고 먹고 싶은 음식을 참으며 만나고 싶은 사람을 다음으로 미루는 당신의 오늘에 다 써버리기를 바란다. 나는 당신이 사진을 찍을 때 행복하기를 바란다. 나는 당신이 그림을 그릴 때 행복하길 바라고, 당신이 무대위에서 대사를 읊조리고 동선을 고민할 때 행복하기를 바란다. 이 사진이 사람들의 호응을 살지, 이 그림이 얼마나 비싸게 팔릴지, 당신의 연기를 사람들이 좋게 봐줄지를 고려하기보다 그저 당신이 원해왔던 행위를 하고 있는 바로 지금 이 순간 당신의 행복을 더 우선했으면 한다. 내일 죽어도 좋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당신의 오늘이 완성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오늘 노래하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고, 오늘 수중에 돈이 없을때면 맛있는 라면을 먹고 돈이 많을 때 내가 좋아하는 봉골레 스파게티를 먹는게 행복하다. 사랑하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거나하게 취하고 다음날 눈을 떠 조금 창피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 행복하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2009년 5월 22일 뮤지션으로 살아있는 것이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 '사진공부를 시키지 않았다면 수현이는 죽지 않았을 거야' 하고 이야기했던 엄마는 조금 틀린 것 같다. 수현이는 그 날, 행복했을 것이다. 그렇게 원했던 사진을 그 날도 찍을 수 있어서, 찍고 싶었던 청량리역을 찍고 있어서, 내가 쥐어준 만원으로 맛있는 밥을 먹어서 행복했을 것이다. 얼마전 차안에서 그냥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스피노자가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을 인용하는 것을 듣고 나는 엉엉 울었다. 이제야 이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며 흘린 눈물이었다. 나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내일 모레 공연을 위해 오늘 합주를 할 것이다. 여러분도 그렇게 해주길 바란다. 나는 당신의 오늘이 행복하길 바란다. 당신의 내일같은 건 관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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