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퇴가 아니라 진화예요” 23번 그랜드슬램 챔피언에서 벤처 투자자로, 두 딸의 엄마 세레나 윌리엄스
임신 사실을 안 지 이틀 만에 그랜드슬램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딸을 낳고 나서는 병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지켜야 했다면 어떨까요? 세계 최고의 선수였는데도, 자신의 몸에 대한 이야기를 아무도 들어주지 않아서 말이죠.
테니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세레나 윌리엄스(Serena Williams)의 이야기입니다. 코트 위에서는 누구보다 강했지만, 엄마가 되는 길목에서 그는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을 숨기지 않고 세상에 꺼내 놓았어요. 오늘은 챔피언이자 두 딸의 엄마, 그리고 이제는 투자자로 새 삶을 살아가는 세레나의 이야기를 함께 들여다볼게요.

컴튼의 공용 코트에서 시작된 챔피언
세레나는 1981년, 미국 미시간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 컴튼에서 자랐습니다. 넉넉하지 않은 동네의 공용 테니스 코트에서, 아버지 리처드 윌리엄스의 지도 아래 언니 비너스와 함께 세 살 무렵부터 라켓을 잡았어요. 값비싼 아카데미도, 유명 코치도 없던 출발이었습니다.
그 소녀는 훗날 메이저 대회 단식에서만 23번 우승하며 오픈 시대 최다 기록을 세운 선수가 되었습니다. 강력한 서브와 흔들리지 않는 승부욕으로 20년 넘게 여자 테니스를 지배했고, 언니 비너스와 함께 코트에 오르며 자매가 세계 정상을 나눠 가진 보기 드문 장면도 만들어 냈지요.
임신 9주 차에 들어 올린 23번째 트로피
세레나의 커리어에서 가장 상징적인 순간은, 어쩌면 트로피 그 자체보다 그 트로피를 든 몸의 상태일지도 모릅니다. 2017년 호주 오픈 결승에서 그는 언니 비너스를 꺾고 단식 23번째 그랜드슬램 타이틀을 차지했는데요. 놀랍게도 이때 그는 임신 9주 차였습니다. 대회 시작 이틀 전에야 임신 사실을 알았고, 결승까지 한 세트도 내주지 않고 우승했어요.
세레나 스스로도 이 우승을 커리어 최고의 순간으로 꼽습니다. 한 생명을 품은 채 세계 최정상의 자리에 올랐다는 것. 그 자체로 이미 엄마가 된다는 일이 결코 '멈춤'이 아니라는 걸 보여 준 장면이었습니다.
출산, 그리고 목숨을 건 며칠
2017년 9월, 세레나는 딸 알렉시스 올림피아(Alexis Olympia)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기쁨의 자리는 곧 생사의 갈림길로 바뀌었어요. 분만 중 아기의 심박수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응급 제왕절개로 올림피아를 만났고, 출산 다음 날 세레나는 갑자기 숨이 가빠지는 걸 느꼈습니다.
과거에도 혈전을 겪었던 그는 본능적으로 알았습니다. 폐색전(폐동맥에 혈전이 막히는 위험한 상태)이라는 것을요. 그런데 정작 그가 "CT 촬영과 항응고제가 필요하다"고 호소했을 때, 돌아온 반응은 걱정이 아니라 의심이었습니다.
“누구도 제 말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았어요. 저는 제 몸을 알고 있었는데 말이죠.”
결국 검사에서 폐에 여러 개의 혈전이 발견됐습니다. 이후 심한 기침 때문에 제왕절개 봉합 부위가 터졌고, 응급 수술을 받는 과정에서 혈종까지 발견되는 등 합병증이 연달아 이어졌어요. 세계 최고의 운동선수조차, 자신의 통증을 스스로 증명해야 했던 며칠이었습니다.
"내 이야기가 누군가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면"
세레나는 이 경험을 그냥 개인의 트라우마로 덮어 두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름과 얼굴을 걸고 세상에 꺼내 놓았어요. 미국에서 흑인 산모가 임신·출산 관련 원인으로 사망할 위험이 백인 산모보다 몇 배나 높다는 현실, 그리고 여성이 자기 몸에 대해 말할 때 쉽게 무시당한다는 문제를 그는 자신의 사례로 정면으로 짚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운동선수마저 제대로 된 돌봄을 받기까지 그토록 애를 써야 했다면, 이름 없는 수많은 산모들은 어땠을까. 세레나의 고백은 이 질문을 세상에 던졌고, 이후 그는 산모 건강, 특히 흑인 산모 건강 문제를 알리는 목소리가 되었습니다.
엄마가 되어 본 사람이라면 알 거예요.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나만큼 아는 사람은 없다는 걸요. 세레나의 이야기는 "이상하면, 될 때까지 말하세요"라는 단단한 응원처럼 들립니다.

산후우울, 그리고 솔직한 엄마의 얼굴
몸의 위기를 넘긴 뒤에도 마음의 시간은 따로 흘렀습니다. 세레나는 출산 후 산후우울과 죄책감을 겪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는데요. 훈련과 대회로 딸 곁을 지키지 못할 때면 "내가 좋은 엄마가 아닌 것 같다"는 감정에 시달렸다고 해요. 세계를 제패한 챔피언도, 엄마라는 자리 앞에서는 우리와 똑같이 흔들렸던 겁니다.
대신 그는 그 감정을 부끄러워하며 숨기지 않고 말로 꺼냈습니다. 산후의 복잡한 감정은 제때 돌보지 않으면 오래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공유하며, 비슷한 시간을 지나는 엄마들에게 "당신만 그런 게 아니에요"라고 손을 내밀었어요. 일과 육아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일을 그는 "진짜 예술 같은 일"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은퇴가 아니라 '진화', 투자자로 사는 두 번째 삶
2022년, 세레나는 코트를 떠나겠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그는 '은퇴(retirement)'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은퇴라는 말은 저와 어울리지 않아요. 제가 하려는 걸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는 아마 ‘진화(evolution)’일 거예요.”
그 진화의 무대가 바로 세레나 벤처스(Serena Ventures)입니다. 2017년 조용히 시작한 이 벤처 투자사를 통해, 세레나는 여성·유색인종 등 그동안 투자에서 소외돼 온 창업가들에게 자본을 연결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2022년에는 1억 1,100만 달러 규모의 첫 공식 펀드를 발표했고, 지금까지 수십 개 기업에 투자하며 그중 여럿을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으로 키워 냈습니다.
선수 시절 자신이 마주했던 '기울어진 운동장'을, 이번에는 투자자의 자리에서 바로잡으려는 셈이지요. 코트에서 쌓은 승부의 감각이 이제는 다음 세대 창업가를 알아보는 눈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두 딸의 엄마, 그리고 '역대 최고의 엄마'
세레나는 남편 알렉시스 오해니언(Alexis Ohanian)과 함께 두 딸을 키우고 있습니다. 2023년 8월에는 둘째 딸 아디라 리버(Adira River)가 태어나 가족이 넷이 되었어요. '아디라'는 히브리어로 '강하고 위엄 있는'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레딧을 공동 창업한 사업가이기도 한 남편은 둘째의 탄생을 알리며 세레나를 "역대 최고의 엄마(Greatest Mother Of All Time)"라고 불렀는데요. 23번의 그랜드슬램 우승을 뜻하는 'GOAT(Greatest Of All Time)'라는 별명을, 이제는 엄마라는 자리에 붙여 준 셈입니다.
정작 세레나 본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요즘 테니스 커리어와 가족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자신은 가족을 택하겠다고요. 세계를 제패한 챔피언이 가장 위대한 성취로 꼽은 것이 결국 '엄마가 된 일'이라는 사실은,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포브스는 세레나 윌리엄스를 순전히 운동선수로 부를 일군 여성 중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인물로 꼽으며, 그의 순자산을 약 4억 달러로 추산했어요. 코트 위 상금만 약 9,480만 달러를 벌어들인 그는 은퇴 이후 사업가로서의 정체성을 더 뚜렷이 했는데요. 2014년 시작해 직접 이끄는 벤처투자사 ‘세레나 벤처스’는 2022년 1억 1,100만 달러 규모의 1호 펀드를 조성했고, 투자한 기업 중 16곳이 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유니콘으로 성장했어요. 포트폴리오의 상당수를 여성과 유색인종 창업가에게 배분하며 ‘기회의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든다’는 원칙을 지켜온 점이 특히 주목받았죠. 여기에 마이애미 돌핀스 지분, 여자축구팀 엔젤시티 FC, WNBA 신생 구단 토론토 템포 등 스포츠 구단 지분까지 넓히며 그는 ‘얼굴’이 아니라 ‘판을 짓는 사람’으로 자리를 옮겨가고 있어요.
“그저 얼굴이 되는 대신, 저는 그 판의 일부가 되고 싶어요. 인프라 안으로 들어가고 싶고, 브랜드 그 자체가 되고 싶어요.”
포브스 참고: 기사 보기
흔들려도 괜찮아요, 우리도 매일 진화하는 중이니까
세레나 윌리엄스의 이야기에는 트로피만 있는 게 아닙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던 병실, 스스로 "좋은 엄마가 아닌 것 같다"고 자책하던 밤, 그리고 그 시간을 지나 다시 자기 삶을 새로 그려 간 용기가 함께 있어요.
엄마가 된다는 건 커리어의 공백이 아니라, 한 사람을 더 단단하고 넓게 만드는 진화의 과정이 아닐까요. 오늘 조금 흔들렸더라도 괜찮습니다. 우리도 저마다의 자리에서 매일 조금씩 진화하고 있으니까요. 내 몸의 신호를 믿고, 내 이야기를 당당히 말하면서요.
📚 참고: Vogue(2022년 은퇴 에세이), CNN Opinion(2018, 세레나 윌리엄스 기고), Olympics.com, Time, Good Morning America, Newsweek, TechCrunch, 위키피디아 'Serena Willi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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