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첫 흑인 여성 억만장자, 두 아이 엄마 셰일라 존슨
혹시 이런 순간이 있었나요. 분명히 내가 함께 만든 일인데, 세상은 자꾸 그 앞에 남편의 이름, 회사의 이름, 누군가의 이름만 불러주던 순간이요. 아이를 낳고 키우는 사이 내 이름 석 자가 조금씩 흐릿해지는 것 같아 조용히 서운했던 날들 말이에요.
오늘 소개할 셰일라 존슨(Sheila Johnson)은 미국 최초의 흑인 여성 억만장자 중 한 명입니다. 미국 첫 흑인 대상 케이블 방송 BET를 함께 세웠고, 럭셔리 호텔 브랜드 살라만더를 창업했으며, 프로 스포츠 구단 세 곳의 지분을 가진 사람이죠. 그런데 정작 그가 자신의 회고록에서 가장 오래 이야기한 건, 화려한 성공이 아니라 "내 이름을 되찾기까지 걸린 시간"이었습니다.

바이올린을 가르치던 선생님이 있었어요
셰일라 존슨은 194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맥키스포트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재향군인회 소속 신경외과 의사, 어머니는 회계사였어요. 부족함 없이 자랐지만, 아버지의 일 때문에 이사를 자주 다녀야 했던 어린 셰일라에게 가장 든든한 친구가 되어준 건 음악이었습니다.
그는 실력 있는 바이올리니스트로 성장했고, 일리노이대학교를 졸업한 뒤 아이들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됩니다. 청소년 현악 앙상블을 직접 꾸려 지역 대회에 데리고 다니기도 했어요. 훗날 방송사를 세우고 호텔을 짓게 될 사람의 출발점이, 아이들 손에 활을 쥐여주던 음악 교실이었다는 건 오래 기억해둘 만합니다.
BET를 함께 세웠지만, 간판은 남편의 것이었죠
1969년, 셰일라는 로버트 L. 존슨과 결혼합니다. 그리고 1979년, 부부는 함께 BET(Black Entertainment Television)를 창업해요. 미국 최초로 흑인 시청자를 위해 만들어진 케이블 채널이었습니다. 셰일라는 초창기 프로그램 편성과 대외 업무를 이끌며 회사를 함께 키워냈어요.
BET는 2000년 무렵 미디어 기업 비아콤에 약 30억 달러에 인수됩니다. 셰일라는 지분을 정리하며 2001년 미국 최초의 흑인 여성 억만장자가 되었어요. 숫자만 보면 완벽한 성공담이죠. 하지만 셰일라 본인은 그 시절을 그렇게 기억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솔직하게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어요. 셰일라의 출발선은 분명 많은 이들보다 앞에 있었습니다. 교육받은 부모, 안정된 가정, 그리고 미디어 거물과의 결혼까지요. 그럼에도 그의 이야기가 특별한 건, 그 자리 안에서 그가 점점 지워지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회사 안에서 자신의 역할과 목소리가 흐려지는 걸 지켜봐야 했고, 회고록에서 그는 이 시기를 두고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사람들은 제 인생을 신데렐라 이야기라고 불렀지만, 사실 그건 악몽이었어요."
딸의 꿈을 위해, 방향을 튼 엄마
셰일라에게는 두 아이가 있습니다. 딸 페이지(Paige)와 아들 브렛(Brett)이에요. 그리고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 하나는, 뜻밖에도 딸의 꿈에서 시작됩니다.
페이지는 어릴 때부터 말을 사랑했어요. 다섯 살 무렵부터 셰일라는 딸을 승마 대회에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고, 페이지는 훗날 프로 장애물 비월 선수로 성장합니다. 딸의 대회를 따라다니던 어느 날, 셰일라는 버지니아주 미들버그라는 말(馬)의 고장에 발을 들이게 돼요. 그는 이 인연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딸에게 정말 큰 공을 돌려야 해요. 딸의 승마 대회 하나가 저를 미들버그로 데려왔으니까요."
1999년, 셰일라는 BET를 떠납니다. 자신의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딸의 승마 커리어를 곁에서 돕기 위해서이기도 했어요. 한창 정점에 있던 회사를 뒤로하고 아이의 꿈 쪽으로 삶의 방향을 튼 선택. 누군가는 물러선 것이라 볼지 몰라도, 셰일라에게 그건 다음 무대를 향한 방향 전환이었습니다.

이혼, 그리고 '내 이름으로' 다시 지은 제국
2002년, 셰일라는 로버트 존슨과 이혼합니다. 33년의 결혼이 끝나던 시기, 그는 회사에서 밀려나는 아픔까지 함께 겪었다고 회고했어요. 이혼 합의금은 약 4억 달러에 달했고, 당시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이혼 중 하나로 기록됩니다. 하지만 셰일라는 그 돈을 '끝'이 아니라 '시작'의 자본으로 썼습니다.
2005년, 그는 호텔·리조트 기업 살라만더 호스피탈리티를 세웁니다. 그리고 2013년, 버지니아 미들버그의 약 340에이커 부지에 살라만더 리조트 앤드 스파를 열어요. 셰일라는 이 리조트의 개관을 두고 "두 아이를 키운 것 다음으로 가장 자랑스러운 커리어의 성취"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살라만더 컬렉션은 플로리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자메이카, 버지니아까지 이어지는 고급 리조트 포트폴리오로 성장했죠.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셰일라는 워싱턴 지역 프로 스포츠를 운영하는 모뉴멘털 스포츠 앤드 엔터테인먼트의 파트너로서 WNBA 미스틱스, NBA 위저즈, NHL 캐피털스 세 구단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요. 프로 스포츠 구단 세 곳의 지분을 동시에 가진 유일한 흑인 여성이죠. 2013년에는 영화 더 버틀러의 총괄 프로듀서로도 이름을 올렸고, 자신이 정착한 마을에서 미들버그 영화제를 창설해 예술계 후원자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포브스는 2026년 7월 기준 셰일라 존슨의 순자산을 약 12억 달러로 집계하며, 그를 오프라 윈프리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부유한 흑인 여성으로 꼽습니다. 자수성가 지수는 10점 만점에 9점. 남편의 그늘에서 지워질 뻔했던 이름이, 이제는 순위표에 홀로 또렷하게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2024년, 셰일라는 첫 회고록 Walk Through Fire: A Memoir of Love, Loss, and Triumph(불길을 지나: 사랑과 상실, 그리고 승리의 기록)를 펴냈습니다. 그는 이 책을 쓰는 일이 일종의 치유였다고, 오랜 시간 외상 후 스트레스와 싸워왔다고 담담히 털어놓았어요. 화려한 이력서 뒤에 있던 진짜 이야기를, 이제야 자기 목소리로 꺼내놓은 셈입니다.
지워졌던 이름을, 스스로 다시 쓴다는 것
셰일라 존슨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가져올 건 '4억 달러'나 '억만장자' 같은 숫자가 아닐지도 몰라요. 그보다는, 한번 흐려졌던 자기 이름을 다시 또렷하게 써 내려간 태도가 아닐까요. 딸의 꿈을 위해 기꺼이 방향을 틀 줄 알았고, 무너진 자리에서 남의 간판이 아닌 자기 이름으로 다시 일어섰으니까요.
지금 내 이름이 조금 흐릿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사라진 게 아니라 다음 페이지를 기다리는 중일지도 몰라요. 셰일라가 그랬듯이요.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이름을 지켜내고 있는 모든 엄마들을, 육아크루가 씩씩하게 응원합니다.
참고 자료
· 위키피디아, Sheila Johnson
· Forbes, Sheila Johnson Profile
· NPR, BET cofounder Sheila Johnson writes her Cinderella story was really a nightmare
· CBS News, Sheila Johnson on memoir Walk Through Fire
· Simon & Schuster, Walk Through F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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