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조 원 헤지펀드를 굴리는 워킹맘, 소니아 가드너
혹시 이런 생각, 해보신 적 있나요? "지금 내가 걷는 길이 원래 계획했던 길이 아닌데, 이대로 괜찮을까?" 법대를 나와 변호사가 됐는데 어느 날 투자자가 되어 있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사이 세상은 또 저만치 바뀌어 있고요. 계획대로 흘러가는 인생은 사실 거의 없죠.
오늘 소개할 소니아 가드너(Sonia Gardner)의 삶도 그랬어요.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태어나 네 살에 미국 땅을 밟은 이민자 소녀, 철학을 전공한 변호사, 그리고 오빠와 단둘이 시작해 120억 달러(약 16조 원)가 넘는 돈을 굴리는 헤지펀드 애비뉴캐피탈(Avenue Capital Group)의 공동창업자. 한 아이를 키운 엄마이기도 한 그의 이야기를 함께 들여다볼까요?

모로코에서 온 네 살 이민자 소녀
소니아 가드너는 1962년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유대인 가정의 딸로 태어났어요. 본명은 소니아 에스더 라스리(Sonia Esther Lasry). 아버지는 컴퓨터 프로그래머였고 어머니는 학교 선생님이었죠. 온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온 건 소니아가 네 살이던 1966년이었어요. 낯선 언어, 낯선 나라에서 새로 시작해야 했던 이민 가정의 아이. 소니아는 코네티컷주 웨스트하트퍼드에서 오빠 마크 라스리(Marc Lasry), 언니 루스와 함께 자랐어요.
솔직히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어요. 소니아의 성공에는 훗날 함께 회사를 세운 오빠 마크라는 든든한 파트너가 있었다는 점이에요. 두 남매는 커리어의 거의 모든 길목을 함께 걸었죠. 그럼에도 그가 이민자 가정의 딸로 출발해, 여성이 손에 꼽던 금융의 세계에서 자기 자리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아요.
소니아는 클라크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해 1983년 우등으로 졸업하고, 1986년 카도조 로스쿨에서 법학 학위(J.D.)를 받았어요. 커리어의 시작은 투자자가 아니라 변호사였죠. 카우언앤드컴퍼니(Cowen & Company)의 파산·기업회생 부서에서 선임 변호사로 일했거든요.
변호사에서 부실채권 투자자로
바로 이 파산·회생 부서가 소니아의 인생을 바꿔놓았어요. 1980년대 후반, 소니아와 오빠 마크는 카우언에서 파산·기업회생 부서를 함께 꾸리며 부실채권 투자(distressed debt)라는, 당시만 해도 낯설던 분야의 개척자가 됐어요.
부실채권 투자란 쉽게 말해 위기에 빠진 기업의 빚을 싸게 사들이는 일이에요. 남들이 "저 회사 곧 망한다"며 등을 돌릴 때, 그 안에서 되살아날 가치를 찾아내는 거죠. 복잡한 법적 절차와 구조조정을 꿰뚫어야 하는데, 변호사 출신인 소니아에겐 오히려 강점이었어요.
1989년 남매는 부실채권 중개회사 암록인베스트먼트(Amroc Investments)를 세웠어요. 그리고 마침내 1995년, 둘은 단돈 700만 달러의 자본으로 애비뉴캐피탈의 전신인 애비뉴인베스트먼트를 창업합니다. 지금 애비뉴캐피탈이 굴리는 자산이 120억 달러가 넘으니, 그야말로 맨땅에서 시작한 셈이에요.
아이를 키우며 회사를 키운 30년
소니아는 애비뉴캐피탈의 사장이자 매니징파트너, 공동창업자로 30년 가까이 회사를 이끌어왔어요. 부실·저평가 채권과 주식을 미국, 유럽, 아시아에서 발굴하는 글로벌 대체투자 운용사로 키워낸 거죠. 이 오랜 세월 동안 그는 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도 했어요.

헤지펀드 업계는 지금도 여성이 귀한 세계예요. 하물며 소니아가 시작하던 시절은 어땠을까요. 그는 여성 금융인들의 네트워크에 꾸준히 힘을 보탰어요. 2008년 '헤지펀드 여성 100인(100 Women in Hedge Funds)'의 산업리더십상을 받았고, 이후 이 단체의 이사회 의장까지 맡았죠. 뒤따라오는 여성들이 덜 외롭도록 길을 닦아준 거예요.
리더십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리더십이란 어깨 위에 좋은 머리를 얹고, 다른 사람 안의 최고를 끌어내며, 새로운 아이디어에 열려 있는 것입니다.”
16조 원을 굴리는 손, 그리고 세계의 여성들
포브스는 2025년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자수성가 여성(America's Richest Self-Made Women)' 명단에 소니아 가드너를 올렸어요. 추정 순자산은 약 4억 1,000만 달러(약 5,700억 원). 재산의 원천은 오롯이 '금융, 자수성가'로 기록돼 있죠. 앞서 2015년에는 포브스의 '미국으로 건너온 외국 태생 자수성가 여성' 기획에도 이름을 올렸어요. 네 살에 바다를 건너온 이민자 소녀가 도달한 자리예요.
돈을 버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해요. 2020년, 소니아는 유엔 사무총장의 임명으로 유엔자본개발기금(UNCDF)의 '금융 접근성 성평등' 초대 친선대사가 됐어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여성과 지역사회가 금융의 힘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죠. 그는 이 일을 두고 "겸허하게 이 역할을 맡는다"고 했어요.
최근에는 새로운 도전에도 뛰어들었어요. 애비뉴캐피탈은 스포츠 팀과 리그에 투자하는 애비뉴 스포츠 펀드를 선보였고, 2025년 10억 달러가 넘는 자금을 모았어요. 특히 소니아는 아직 저평가된 여성 스포츠의 장기 성장 가능성에 주목한다고 밝혔죠. 예순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다음 판을 읽고 있는 거예요.
그가 오래 간직해온 조언은 이거예요.
“당신의 열정을 따르세요. 열정이 있고 사랑하는 일이라면, 성공할 가능성이 더 크니까요.”
계획대로가 아니어도, 나는 계속 자라요
변호사로 출발해 투자자가 되고, 이민자 소녀에서 16조 원을 굴리는 손이 되기까지. 소니아 가드너의 길은 한 번도 '원래 그렇게 정해진' 길이 아니었어요. 그때그때 눈앞의 기회를 붙잡고,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정직하게 몰두하며 만들어온 길이었죠.
아이를 낳고 세상이 조금 달라 보이는 요즘의 나에게도, 소니아의 이야기는 작은 힌트를 건네요. 지금 걷는 길이 계획과 다르다고 해서 뒤처진 게 아니라는 것. 한 생명을 키워내는 그 시간 역시 나를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드는 성장이라는 것. 오늘의 나 역시, 조용히 그리고 씩씩하게 자라는 중이에요.
참고 자료
· 위키피디아 — Sonia Gardner
· 포브스 프로필 — Sonia Gardner (America's Richest Self-Made Women)
· UNCDF — Sonia Gardner Named Goodwill Ambassador
· CNBC — Sonia Gardner
· Avenue Capital Group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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