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전 한 닢 없이 온 이민자 싱글맘, 눈썹으로 뷰티 제국을 세우다! 아나스타샤 소아레
낯선 나라에 처음 도착했던 순간을 상상해 볼까요? 말도 서툴고, 아는 사람도 없고, 주머니엔 정말로 동전 한 닢조차 없었다면요. 게다가 홀로 아이를 키워야 하는 엄마라면, 그 막막함은 더 크게 다가왔을 거예요.
루마니아에서 온 서른 살의 아나스타샤 소아레(Anastasia Soare)가 바로 그런 처지였어요. 영어도 제대로 못 하던 이민자였지만, 그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눈썹' 하나로 세계적인 뷰티 브랜드를 세웠어요. 그리고 그 회사를, 프런트 데스크에서부터 함께 자란 딸에게 물려주고 있죠. 오늘 <대단한 엄마들>이 만나볼 이야기예요.

루마니아에서 온 서른 살, 영어도 서툴렀던 이민자
아나스타샤는 1957년 루마니아의 항구 도시 콘스탄차에서 태어났어요. 부모님은 모두 재단사였고, 그는 어릴 적부터 옷감과 비례, 선을 보며 자랐죠. 대학에서는 미술사와 건축을 공부했어요. 훗날 그의 사업을 지탱하는 '비율'에 대한 감각이 이때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그가 살아온 세상은 공산주의 체제의 루마니아였어요. 그는 30년을 그 안에서 보냈고, 자유롭게 꿈을 펼치기 어려운 시대였죠. 1989년, 아나스타샤는 어린 딸과 함께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건너왔어요. 영어는 거의 못 했고, 가진 돈도 거의 없었어요.
훗날 그는 미국에 도착했을 때를 "동전 한 닢조차 없었다"고 회고했어요. 그리고 창업이 얼마나 고된 일이었느냐는 질문에, 자신이 견뎌온 공산주의 시절에 빗대어 이렇게 답했죠.
“저는 공산 정권 아래 루마니아에서 30년을 살았어요. 사업가가 된다는 건 그와 비슷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도 눈썹을 보지 않던 나라에서 발견한 기회
로스앤젤레스에서 아나스타샤는 한 뷰티 살롱의 피부 관리사로 일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일하면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죠. 루마니아에서는 눈썹을 다듬는 일이 당연했는데, 미국에서는 아무도 눈썹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거예요.
그는 여기서 기회를 봤어요. 미술사와 건축을 공부하며 익힌 '황금비율(Golden Ratio)'을 눈썹에 적용한 거죠. 사람마다 다른 얼굴 골격과 이목구비에 맞춰 가장 조화로운 눈썹 형태를 찾아내는 기법이었어요. 그는 눈썹이 얼굴 전체의 인상을 좌우한다고 믿었어요.
“초상화를 그릴 때 감정을 바꾸고 싶다면 눈썹을 바꾸면 돼요. 눈썹을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놀란 얼굴도, 슬픈 얼굴도, 아주 세련되고 우아한 얼굴도 만들 수 있죠.”
처음엔 살롱 매니저조차 "눈썹으로 무슨 사업이 되겠냐"며 시큰둥했다고 해요. 하지만 아나스타샤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1992년, 그는 비벌리힐스의 한 살롱 안에 작은 방 하나를 빌려 자신만의 눈썹 관리를 시작했어요. 그리고 1997년에는 마침내 비벌리힐스 베드퍼드 드라이브에 자신의 이름을 건 살롱을 열었죠.
입소문은 빠르게 퍼졌어요. 신디 크로퍼드, 나오미 캠벨, 오프라 윈프리, 제니퍼 로페즈 같은 이들이 그의 눈썹을 받으러 찾아왔어요. 재미있게도 아나스타샤는 그들이 누구인지도 잘 몰랐다고 해요.

눈썹 하나로 억만장자의 문턱까지
2000년, 아나스타샤는 살롱을 넘어 제품으로 나아갔어요.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아나스타샤 베벌리힐스(Anastasia Beverly Hills)를 세우고, 눈썹 스텐실과 브로우 제품을 선보였죠. '브로우 위즈' 같은 제품은 뷰티 마니아들의 필수품이 됐어요. 오늘날 그의 브랜드는 전 세계 약 2,000개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어요.
성취는 숫자로도 증명됐어요. 2018년, 사모펀드 TPG가 투자하며 회사 가치는 한때 30억 달러로 평가받았어요. 아나스타샤는 포브스가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자수성가 여성' 2025년 명단에서 47위에 올랐고, 추정 순자산은 약 7억 4,000만 달러에 이르러요.
물론 늘 순탄했던 건 아니에요. 팬데믹 이후 매출이 흔들리자, 2025년 말 그는 회사의 빚을 줄이기 위해 사재 2억 2,500만 달러를 직접 투입하기도 했어요. 서른 살에 동전 한 닢 없이 시작한 이민자가, 이제는 자신의 제국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방패가 되어 주는 자리에 선 거죠.
“아메리칸드림은 아직 살아 있어요. 미국에는 정말 많은 기회가 있으니까요.”
프런트 데스크에서 사장이 된 딸, 클라우디아
아나스타샤의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딸 클라우디아 소아레(Claudia Soare)예요. 아나스타샤는 1994년 이혼한 뒤 홀로 딸을 키운 싱글맘이었어요. 회사를 키우는 내내 그의 곁에는 딸이 있었죠.
클라우디아는 엄마 회사의 프런트 데스크 안내 직원에서 시작했어요. 그리고 한 단계씩 밟아 올라가, 2016년 마침내 아나스타샤 베벌리힐스의 사장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됐어요. 지금은 '노비나(Norvina)'라는 이름으로 자신만의 라인까지 이끌고 있죠.
특히 클라우디아는 브랜드를 SNS 시대의 뷰티 아이콘으로 끌어올린 주역이에요. 인스타그램에서 수백만 팬과 소통하며, 엄마가 손끝으로 쌓아 올린 눈썹 기술을 디지털 세대의 언어로 새롭게 번역해 냈어요. 손끝의 장인정신과 화면 속 감각이 만난 셈이죠.
어머니가 세운 회사를 딸이 이어받는다는 것. 그건 단순한 상속이 아니라, 한 여성이 이민자로서 살아낸 시간과 감각을 다음 세대에 온전히 건네는 일이었어요. 아나스타샤가 늘 강조하는 '고객의 목소리를 들으라'는 원칙도, 그렇게 모녀의 손을 거쳐 계속 이어지고 있고요.
동전 한 닢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아나스타샤 소아레의 이야기는 특권으로 시작된 성공담이 아니에요. 낯선 언어, 낯선 나라, 홀로 아이를 키워야 했던 현실 앞에서, 그는 자신이 가장 잘 보는 것—얼굴의 비율과 선—에 집중했어요. 그리고 그 작은 강점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워냈죠.
무엇보다 그는 그 여정을 딸과 함께 걸었어요. 엄마가 된 뒤 마주한 세상은 분명 더 무거웠지만, 그는 그 무게를 성장의 동력으로 바꿔냈어요. 오늘도 세계 어딘가에서 자신의 강점을 붙들고 씩씩하게 나아가는 모든 엄마들에게, 아나스타샤의 눈썹 한 획이 조용한 응원이 되어 주길 바라요.
참고 자료
· Wikipedia, Anastasia Soare
· Forbes, Anastasia Soare Profile (America's Richest Self-Made Women)
· Forbes, ‘Makeup Mogul Anastasia Soare Came To America With Not Even A Coin’
· Glossy, ‘Anastasia Soare on 25 years of Anastasia Beverly Hi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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