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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커버

브루클린 빈민가에서 할리우드 전설이 된 엄마,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공룡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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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런 말, 들어보신 적 있나요? "그렇게 하면 안 팔려." "좀 더 예뻐 보이게 고치는 게 어때?" 세상이 정해둔 틀에 나를 맞추라는 말들 말이에요. 대부분은 그 말 앞에서 조금씩 나를 깎아냅니다. 그런데 여기, 열아홉 살에 "코를 고치면 더 성공할 것"이라는 조언을 듣고도 끝내 자기 얼굴도, 이름도, 목소리도 바꾸지 않은 사람이 있어요.

브루클린의 가난한 셋방에서 자란 소녀가 훗날 오스카와 그래미, 에미를 모두 거머쥔 전설이 되고, 할리우드에서 여성 최초로 한 편의 영화를 각본·제작·감독·주연까지 해낸 사람. 그리고 한 아들을 키운 엄마이기도 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Barbra Streisand)의 이야기입니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사진: Allan Warren, 1973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 출처 보기

아버지 없이, 브루클린의 가난한 소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1942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어요. 그가 돌을 갓 지난 1943년 여름, 교사이자 학자였던 아버지 이매뉴얼이 서른넷의 나이에 갑작스레 세상을 떠납니다. 남겨진 가족에게 닥친 건 가난이었어요. 어머니 다이애나는 박봉의 경리로 일하며 세 아이를 먹여 살렸고, 어린 바브라는 늘 어딘가 겉도는 아이, "동네에서 제일 예쁘지 않은 아이"로 스스로를 기억합니다.

그가 세상을 향해 낸 창은 텔레비전과 극장이었어요. 브루클린 공립학교(P.S. 89)에 다니던 소녀는 화면 속 스타들을 보며 "여기를 떠나 유명해지겠다"는 꿈을 키웁니다. 특별한 인맥도, 물려받을 재산도 없었어요. 가진 건 오직 하나, 남들과 다른 목소리뿐이었죠. 훗날 그는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내 안의 열망은, 엄마에게 '나도 스타가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더 단단해졌어요."

"코를 고치라"는 말에 그가 한 대답

10대 후반, 바브라는 뉴욕의 작은 나이트클럽 무대에 서기 시작합니다. 1962년 브로드웨이 I Can Get It for You Wholesale로 이름을 알렸고, 이듬해 스물한 살에 컬럼비아 레코드와 계약을 맺어요. 그런데 이 계약에 그가 목숨처럼 지킨 조항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내가 부를 노래를 내가 고른다"는 창작 통제권이었어요. 그는 이 권리를 얻는 대신 낮은 개런티를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당시 업계 사람들은 그에게 "스타가 되기엔 너무 못생겼다"며 성형을 권했습니다. 하지만 바브라는 코 수술을 거절했어요. 노래하는 목소리가 달라질까 봐, 그리고 무엇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이기고 싶어서였죠. 그 고집은 곧 증명됩니다. 1968년 영화 퍼니 걸(Funny Girl)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거든요(캐서린 헵번과 공동 수상). 데뷔 영화로 오스카를 거머쥔 셈이에요. 1976년에는 스타 탄생의 주제가 'Evergreen'으로 여성 작곡가 최초로 아카데미 주제가상까지 받습니다.

계약서 한 줄로 지켜낸 '내 방식대로 할 자유'가, 그를 단순한 가수에서 자기 세계를 만드는 아티스트로 바꿔놓은 거예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사진: Health Matters Conference, 2013 (CC BY 2.0), Wikimedia Commons) · 출처 보기

15년을 기다려 감독이 되다, 영화 옌틀

바브라에게는 오래 품어온 이야기가 하나 있었어요. 여성이 배움을 얻기 위해 남장을 하고 신학교에 들어가는 소녀 옌틀(Yentl)의 이야기. 그는 이 작품을 직접 감독하고 싶었지만, 1970년대 할리우드에서 "여자가 큰 영화를 감독한다"는 건 좀처럼 상상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스튜디오를 설득하는 데만 무려 15년이 걸렸어요.

1983년 마침내 완성된 옌틀로, 바브라는 한 편의 메이저 영화를 각본·제작·감독·주연까지 도맡은 최초의 여성이 됩니다. 이듬해 그는 이 작품으로 골든글로브 감독상을 받았는데, 이 상을 받은 첫 여성 감독이기도 했어요. 수상 소감에서 그가 남긴 말은 지금도 자주 인용됩니다.

"이 상이, 재능 있는 수많은 여성들이 저처럼 자신의 꿈을 현실로 만들 새로운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후 그는 사랑과 추억(The Prince of Tides, 1991) 등을 감독하며 '연기하는 사람'을 넘어 '만드는 사람'으로 자리를 넓혀갑니다. 오스카·그래미·에미를 모두 손에 넣었고, 여섯 개의 서로 다른 시대(1960~2010년대)에 걸쳐 빌보드 1위 앨범을 낸 유일한 아티스트라는 기록도 남겼어요. 2015년에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최고 시민 훈장인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았습니다.

브루클린 셋방에서 포브스 자수성가 여성으로

이 모든 성취는 숫자로도 남았습니다. 포브스는 2023년 '미국의 자수성가 여성(America's Self-Made Women)' 명단에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를 순자산 약 4억 3,000만 달러, 61위로 올렸어요. 이후로도 그의 재산은 계속 불어, 포브스 기준 최근 순자산은 약 5억 1,000만 달러에 이릅니다.

중요한 건 이 부(富)의 성격이에요.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60년 넘게 노래하고 연기하고 영화를 만들어 '스스로 벌어낸' 돈이라는 점. 물려줄 재산도, 이끌어줄 인맥도 없던 브루클린의 가난한 소녀가, 자기 목소리 하나로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그가 늘 강조한 원칙은 처음 그 계약서의 한 줄과 다르지 않았어요.

"그 첫 계약에서 가장 중요했던 건, 내가 부를 노래를 스스로 고를 권리였어요. 그게 내가 정말로 신경 쓴 유일한 것이었죠."

아들 제이슨, 그리고 뒤늦게 이해받은 엄마

바브라는 배우 엘리엇 굴드와 결혼해 1966년 아들 제이슨 굴드를 낳았어요. 부부는 1971년 헤어졌고, 그는 세계에서 가장 바쁜 아티스트 중 한 명으로 살면서 아들을 키우는 시간을 함께 통과합니다. 커리어의 정점과 육아가 포개지는 그 시기를, 세상 모든 워킹맘처럼 그도 건너왔던 거예요. 아들 제이슨 역시 배우이자 싱어송라이터로 자라, 두 사람은 무대에서 함께 노래하기도 했습니다.

흥미로운 건, 아들이 엄마를 '온전히' 이해하게 된 계기예요. 2023년 바브라가 여든이 넘어 펴낸 회고록 My Name Is Barbra를 읽고 나서야, 제이슨은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비로소 알게 됐다"고 말했다고 해요. 무대 위 전설이기 이전에, 아버지 없이 가난하게 자라 세상의 편견과 싸워온 한 사람. 그 긴 이야기를 다 읽고서야 아들은 엄마의 삶 전체를 마주한 것입니다.

어쩌면 이건 많은 엄마들의 이야기이기도 해요. 아이에게 엄마는 늘 '엄마'로만 보이지만, 그 이름 뒤에는 꿈을 위해 15년을 기다리고, "안 된다"는 말과 수없이 싸워온 한 사람의 긴 역사가 있으니까요.

나를 바꾸지 않고 세상을 바꾸는 법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삶이 우리에게 건네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세상이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할 때, 나를 깎아 세상에 맞출 수도 있지만, 내 목소리를 지키며 세상 쪽을 조금씩 넓혀갈 수도 있다는 것. 코를 고치지 않고, 이름을 바꾸지 않고, 부를 노래를 스스로 골라온 60년이 그 증거예요.

아이를 낳고 달라진 세상 앞에 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엄마가 된다는 건 나를 잃는 일이 아니라, 브루클린의 그 소녀처럼 내 안의 목소리를 끝까지 믿어주는 일. 오늘 당신이 지켜내는 그 목소리가, 언젠가 아이가 읽어낼 당신의 가장 멋진 이야기가 될 거예요.

참고 자료: Forbes 프로필 및 America's Self-Made Women · Wikipedia, Barbra Streisand · 공식 홈페이지 바이오그래피 · Golden Globes, 1984년 감독상 기록 · 회고록 My Name Is Barbra(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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