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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 카란 커버

"일하는 여성의 옷", DKNY 창업자이자 워킹맘, 도나 카란

공룡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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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아침, 옷장 앞에서 한참을 서 있어 본 적 있으신가요? 아이 등원 준비에 내 출근 준비까지, 시간은 없는데 뭘 입어야 할지 몰라 결국 어제 입던 옷을 또 집어 든 날들이요. 그런 아침의 막막함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한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어요. "왜 여자 옷은 이렇게 입기 어려울까?"

그리고 그 질문에 스스로 답을 냈습니다. 일하는 여성이 아침에 고민 없이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든 것. 오늘 만나볼 도나 카란(Donna Karan)은 미국 여성복의 문법을 바꾼 디자이너이자, 딸을 키우며 자기 삶도 놓지 않았던 워킹맘입니다.

도나 카란
도나 카란 (사진: Wikimedia Commons (CC BY 2.0)) · 출처 보기

재봉 가위 소리 속에서 자란 아이

도나 카란은 1948년 뉴욕 퀸스에서 도나 아이비 파스케(Donna Ivy Faske)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패션은 태어날 때부터 곁에 있었어요. 어머니는 쇼룸에서 일하던 모델이었고, 아버지 게이브리얼 '개비' 파스케는 재단사이자 양복점 주인이었습니다. 다만 아버지는 도나가 세 살 때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가 언니와 도나 자매를 홀로 키웠습니다.

롱아일랜드에서 자란 도나는 열네 살 때 이미 옷가게에서 일을 시작할 만큼 옷을 좋아했고, 뉴욕의 명문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 진학합니다. 하지만 학교를 끝까지 다니지는 못했어요. 재학 중 디자이너 앤 클라인(Anne Klein)의 회사에 들어가면서, 교실 대신 진짜 작업실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됩니다.

스물다섯, 갑작스레 어깨에 얹힌 브랜드

앤 클라인의 어시스턴트로 출발한 도나는 실력을 인정받아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1974년, 그의 멘토였던 앤 클라인이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나요. 스물다섯 살의 도나 카란은 하루아침에 유명 브랜드의 수석 디자이너 자리를 떠안게 됩니다.

더 극적인 건, 그가 이 무렵 첫아이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멘토의 죽음, 브랜드의 무게, 그리고 곧 태어날 아기. 세 가지가 한꺼번에 몰려온 순간이었죠. 훗날 도나는 이 시절을 회고하며 자신의 태도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저는 '안 된다'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방식으로 장애물을 넘었어요. 그냥 밀고 나가서 해냈죠. 제 머릿속엔 다른 선택지가 없었으니까요.”

그는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딸을 낳고 다시 작업실로 돌아와 앤 클라인의 컬렉션을 이끌며 10년을 채웠어요.

세븐 이지 피시스, 여성복의 문법을 바꾸다

1984년, 도나 카란은 자기 이름을 건 회사를 세웁니다. 남편이자 조각가인 스티븐 와이스, 그리고 일본 다키히요사와 함께였어요. 이듬해 선보인 첫 컬렉션의 콘셉트가 바로 그를 전설로 만든 '세븐 이지 피시스(Seven Easy Pieces)'였습니다.

아이디어는 단순하지만 혁명적이었습니다. 보디수트를 기본으로, 서로 바꿔 입을 수 있는 일곱 가지 옷만 있으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회의실에서 저녁 약속까지 모두 소화할 수 있다는 것. 복잡한 코디 고민 없이 바쁜 여성이 실제로 입을 수 있는 옷이었죠. 도나의 원칙은 명확했습니다.

  • 내가 실제로 입고 싶은 옷만 디자인한다
  • 몸매의 단점은 가리고, 장점은 살린다
  • 한 벌 한 벌이 아니라, 여성의 하루 전체를 디자인한다

그가 여성의 몸을 편안하게 감싸는 저지 소재와 보디수트를 앞세운 건, 자신이 마른 몸이 아니었기에 오히려 진짜 여성의 몸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패션계는 그를 '7번가의 여왕'이라 불렀습니다.

도나 카란
도나 카란 (사진: Wikimedia Commons / David Shankbone (CC BY 3.0)) · 출처 보기

딸을 위해 만든 옷, DKNY

1988년, 도나는 조금 더 젊고 대중적인 라인 DKNY(Donna Karan New York)를 론칭합니다. 이 브랜드의 탄생 배경에는 아주 개인적인 이유가 있었어요. 바로 딸 개비(Gabby)였습니다.

10대가 된 딸에게 입힐 만한, 가격도 합리적이면서 도시적인 옷을 찾다가 마땅한 게 없자 "그럼 내가 만들지" 하고 나선 것이죠. 자신의 완벽한 청바지에 대한 갈망과, 딸을 잘 입히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만나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가 아는 DKNY는 이렇게 한 엄마의 실용적인 고민에서 출발했습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삶이 늘 매끄러웠던 건 아닙니다. 도나 역시 브랜드를 키우느라 딸과 충분히 함께하지 못한 시간을 아쉬워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그럼에도 그가 만든 옷들은, 자신과 같은 처지의 수많은 워킹맘들의 아침을 조금 더 가볍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사별, 그리고 '옷 입히기'에서 '보살피기'로

도나의 든든한 동반자였던 남편 스티븐 와이스는 회사의 공동 대표로서 사업을 함께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2001년, 그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남편의 투병 과정에서 도나는 환자와 그 가족이 겪는 고통, 그리고 병원이라는 공간이 얼마나 삭막한지를 온몸으로 경험했어요.

이 상실은 그를 완전히 새로운 길로 이끌었습니다. 2007년, 도나는 웰니스와 자선을 결합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이자 재단 어반 젠(Urban Zen)을 세웁니다. 문화 보존, 웰빙, 교육을 화두로 삼고, 특히 요가와 명상 같은 통합 치유를 병원 현장에 들이는 활동에 힘을 쏟았죠. 그는 이 변화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이제 저는 그저 사람들에게 '옷을 입히는(dress)' 것을 넘어,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고 싶은(address)' 지점에 온 것 같아요.”

포브스가 기록한 '4억 5천만 달러의 여성'

도나 카란의 이름값은 숫자로도 증명됩니다. 2000년, 명품 대기업 LVMH가 도나 카란 인터내셔널을 인수했는데, 이 거래로 도나와 남편이 손에 쥔 금액은 약 4억 5천만 달러로 알려졌습니다. 포브스가 그를 '4억 5천만 달러의 여성'이라 부른 이유죠.

2015년 자신의 이름을 건 패션 하우스의 수석 디자이너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그의 위상은 여전합니다. 포브스는 2025년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자수성가 여성' 명단에 도나 카란을 올렸고, 그의 순자산을 약 5억 9천만 달러로 추산했습니다. 파슨스를 중퇴하고 앤 클라인의 어시스턴트로 시작했던 한 여성이, 반세기 만에 만든 결과입니다.

물론 그의 성공에는 뉴욕 패션계 한복판에서 자랐다는 환경적 배경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멘토의 갑작스러운 죽음, 남편과의 사별이라는 상실 앞에서 무너지는 대신 매번 새로운 챕터를 열어젖힌 선택과 태도야말로, 그를 진짜 '대단한' 사람으로 만든 힘일 거예요.

내 삶을 놓지 않은 엄마의 옷장

도나 카란의 이야기가 특별한 건, 그가 만든 옷이 결국 '자기 삶을 살아가는 여성'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일을 하면서도, 아침마다 나답게 존재하고 싶었던 여성들. 그 마음을 옷으로 번역한 사람이었죠.

지금도 그는 딸 개비와 함께 어반 젠을 이어가며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습니다. 한 생명을 키워내고, 한 시대의 옷장을 바꾸고, 다시 사람을 보살피는 일로 나아간 도나 카란. 엄마가 된 뒤에도 세상은 계속 넓어질 수 있다는 걸, 그의 삶이 조용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참고 자료

· Wikipedia, Donna Karan
· Forbes, Donna Karan Profile (America's Self-Made Women)
· Forbes, Donna Karan, Fashion's $450 Million Woman, Leaves Namesake Label
· Britannica, Donna Karan
· Urban Zen Foundation 공식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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