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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야슈리 울랄 커버

엄마, 언제 다시 일하러 가? 딸의 한마디에 돌아온 아리스타 CEO 자야슈리 울랄

공룡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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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고 한동안 일을 쉬어본 엄마라면, 마음 한구석에 이런 질문 하나쯤 품고 살아요. "다시 일터로 돌아갈 수 있을까? 돌아가면 예전의 나로 일할 수 있을까?" 그 망설임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손꼽히는 클라우드 네트워킹 기업 아리스타 네트웍스(Arista Networks)를 이끄는 회장 겸 CEO, 자야슈리 울랄(Jayshree Ullal)이에요.

반도체 엔지니어로 출발해 시스코의 핵심 사업을 키우고, 직원 50명도 안 되던 스타트업을 매출 9조 원대 상장기업으로 성장시킨 사람. 그런 그가 커리어의 정점에서 한 번, 일을 멈추고 두 딸 곁으로 돌아간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를 다시 세상으로 불러낸 건, 다름 아닌 두 딸의 한마디였어요.

자야슈리 울랄
자야슈리 울랄 (사진: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 출처 보기

런던에서 태어나 뉴델리에서 자란, 물리학자의 딸

자야슈리 울랄은 1961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어요. 아버지는 인도 정부와 일하던 물리학자였고, 그가 네 살이 되던 해 가족은 인도로 돌아갑니다. 어린 시절은 뉴델리에서 보냈어요. 학업 분위기가 엄격하기로 유명한 여학교 '지저스 앤 메리 수녀원 학교'를 다녔죠.

인도에서 자란 소녀가 낯선 세상으로 나선 건 열여섯 살 때였어요. 홀로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교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이후 산타클라라 대학교에서 공학경영 석사 학위를 받습니다. 1980년대, 여성 엔지니어가 지금보다 훨씬 드물던 시절이었어요.

칩을 설계하던 엔지니어에서, 시스코의 성장 엔진으로

그의 첫 커리어는 화려한 임원실이 아니라 반도체 설계 책상에서 시작됐어요. 페어차일드 반도체와 AMD에서 IBM과 히타치에 들어가는 고속 메모리 칩을 직접 설계했습니다. 기술을 아는 사람이 경영도 이해한다는 그의 강점은 여기서 만들어졌어요.

1992년 그는 작은 스타트업 크레센도 커뮤니케이션즈에 합류했고, 이듬해 이 회사는 시스코에 인수됩니다. 그렇게 시작된 시스코와의 15년. 자야슈리 울랄은 랜(LAN) 스위칭 사업을 맡아 시스코의 '카탈리스트' 스위치 사업을 2000년까지 50억 달러 규모로 키워냅니다. 2005년에는 데이터센터·스위칭·보안 부문 수석부사장으로, 연 매출 약 150억 달러에 이르는 사업을 총괄했어요.

그런데, 정점에서 그는 잠시 멈춥니다

2000년, 시스코에서 한창 이름을 날리던 그는 두 딸을 돌보기 위해 일에서 물러납니다. 커리어의 성공과 어린아이들 곁에 있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그도 여느 엄마와 똑같은 저울질을 했던 거예요. 훗날 그는 이 시절을 돌아보며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 건 결코 쉽지 않았어요. 부모님과 남편, 그리고 여동생까지 온 가족의 큰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그를 다시 일터로 부른 건 뜻밖에도 딸들이었어요. 어느 날 두 딸이 이렇게 물었다고 해요. "엄마, 언제 다시 일하러 가?" 열심히 일하는 엄마의 뒷모습이 아이들에게 부담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풍경이었던 거죠. 그렇게 그는 다시 세상으로 걸어 나옵니다.

자야슈리 울랄
자야슈리 울랄 (사진: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 출처 보기

직원 50명 스타트업을, 매출 9조 원 기업으로

2008년, 두 명의 전설적 창업자 앤디 벡톨샤임과 데이비드 셰리턴이 그에게 한 회사의 경영을 맡깁니다. 바로 아리스타 네트웍스였어요. 그가 합류했을 때 이 회사는 직원 50명도 안 되고 매출은 0원이었습니다.

자야슈리 울랄은 이 작은 회사를 클라우드와 데이터센터, 그리고 오늘날 AI 인프라의 심장인 초고속 네트워킹 시장의 강자로 키워냈어요. 2014년 뉴욕증권거래소 상장(티커 ANET)을 이끌었고, 2024년 아리스타의 매출은 90억 달러, 전년 대비 약 30% 성장이라는 숫자를 기록합니다.

리더로서 그의 철학은 기술만큼이나 사람을 향해 있어요.

"우리는 모두 일을 잘 해내고, 인정받고, 그 인정을 갈망하는 사람들이에요. 동료와 팀을 존중하고, 그들 안의 강점을 길러 잠재력을 온전히 끌어내세요."

포브스가 기록한 자수성가 여성, 자야슈리 울랄

그의 성취는 숫자로도 또렷합니다. 포브스는 자야슈리 울랄을 자수성가(self-made) 억만장자로 분류하고, 순자산을 약 69억 달러(2026년 7월 기준)로 추정하며 세계 부자 순위 574위에 올려두었어요. 포브스가 선정하는 미국 자수성가 여성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고, 지금까지 27개의 포브스 리스트에 오른 인물이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건 이 재산의 쓰임이에요. 그는 아리스타 지분의 상당 부분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중 일부는 두 자녀와 조카들 몫으로 미리 떼어두었다고 알려져 있어요. 포브스는 그를 두고 "네트워킹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다섯 명 중 한 명"이라 평하기도 했습니다.

솔직하게 짚어볼 부분도 있어요

자야슈리 울랄의 이야기를 성공담으로만 읽으면 놓치는 게 있어요. 그는 물리학자 아버지를 둔 교육받은 가정에서 자랐고, 열여섯에 미국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었으며, 부모님과 남편, 여동생이라는 든든한 지지망이 있었습니다. 본인도 여러 번 강조했듯, 가족의 도움 없이는 일과 육아의 병행이 불가능했다고 말할 정도로요. 모든 엄마가 이런 환경을 가진 건 아니라는 사실은 정직하게 인정해야 해요.

그럼에도 배울 점은 분명합니다. 그는 커리어의 정점에서 아이 곁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다시 일터로 나오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어요.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그에게 가르쳐준 건 사업이 아니라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여동생이었다고 그는 말합니다.

"몇 달을 동생의 병상 곁에서 일했어요. 동생이 남긴 가장 값진 가르침은, 우리의 삶과 우리가 맺는 인연을 깊이 감사하라는 것이었죠."

멈춤도, 성장의 일부였습니다

자야슈리 울랄의 커리어에는 잠시 멈춘 시간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 멈춤은 공백이 아니었습니다. 아이 곁에 있던 시간이 있었기에, 열심히 일하는 엄마를 자연스럽게 바라보며 자란 두 딸이 "엄마, 언제 다시 일하러 가?"라고 물을 수 있었으니까요.

일을 쉬어가는 것도, 다시 시작하는 것도 모두 내 삶을 짓는 하나의 과정이에요. 엄마가 되어 세상이 달라졌다면, 그 달라진 세상 위에서 또 한 번 나만의 무언가를 키워낼 수 있어요. 자야슈리 울랄이 직원 50명의 회사를 세계적 기업으로 키워냈듯,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그렇게 자라는 중입니다.

참고 자료

· 위키피디아 · Jayshree Ullal
· Forbes · Jayshree Ullal Profile
· American Bazaar · Jayshree Ullal in her own words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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