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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돈나 커버

여섯 아이의 엄마 마돈나, 데뷔 40여 년의 현역 팝의 여왕!

공룡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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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에서 40여 년을 버틴다는 건 어떤 걸까요? 유행이 몇 번씩 바뀌고, 새로운 스타가 매년 쏟아지는 대중음악의 세계에서 말이에요. 그런데 여기, 데뷔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지금'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팝의 여왕' 마돈나(Madonna)예요. 그런데 오늘 우리가 나눌 이야기는 빌보드 1위나 월드 투어 기록만이 아니랍니다. 무대 밖에서 그는 여섯 아이를 키운 엄마이기도 하거든요. 친자 둘, 그리고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입양한 넷. 서로 다른 뿌리를 가진 여섯 아이를 품은 대가족의 엄마, 마돈나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마돈나
마돈나 (사진: Wikimedia Commons / David Parsons — Sticky & Sweet Tour 2008 (CC BY-SA 2.0)) · 출처 보기

미시간의 소녀, '팝의 여왕'이 되기까지

마돈나 루이즈 시코네는 1958년 미국 미시간에서 태어났어요. 그의 삶에는 아주 이른 상실이 있었습니다. 다섯 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것이죠. 여덟 남매 중 하나로 자란 그는 훗날 이 상실이 자신을 만든 큰 조각이었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어요.

미시간 대학교에 무용 장학생으로 입학했지만 학업을 마치지 않고, 단돈 몇 십 달러를 손에 쥔 채 뉴욕으로 향했습니다. 클럽과 거리에서 춤을 추고 노래하며 자신을 알렸고, 1980년대 초 'Like a Virgin', 'Material Girl' 같은 곡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어요. 이후 'Like a Prayer', 'Vogue', 'Ray of Light'로 이어지며 그는 한 시대의 사운드를 만들어 갑니다.

멈추지 않는 재창조, 그리고 사업가 마돈나

마돈나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단어가 '재창조(reinvention)'예요. 그는 한 자리에 머무는 법이 없었습니다. 발라드에서 일렉트로닉으로, 배우로, 영화감독(직접 연출한 'W.E.')으로, 매번 다른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죠.

무엇보다 그는 냉철한 사업가이기도 했어요. 자신의 대표곡 이름을 딴 패션 브랜드 '머티리얼 걸(Material Girl)'을 2010년 백화점 메이시스와 함께 선보였는데, 이 브랜드를 함께 디자인한 사람이 다름 아닌 큰딸 루르드였습니다. 당시 10대였던 딸의 감각을 브랜드에 담은 거예요. 무대 위 아티스트가 아니라, 딸과 함께 사업을 꾸리는 엄마의 모습이었죠.

  • 솔로 아티스트 사상 역대 최고 투어 수익을 기록한 인물로 꼽혀요.
  • 2008년 '스티키 앤 스위트 투어'는 당시 여성 솔로 투어 최고 흥행(약 4억 1,100만 달러)을 세웠습니다.
  • 2023~2024년 '셀러브레이션 투어'는 약 2억 2,7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그해 최고 흥행 투어 중 하나가 되었어요.
마돈나
마돈나 (사진: Wikimedia Commons / Joey McCoy — MDNA Tour 2012 (CC BY-SA 2.0)) · 출처 보기

여섯 아이의 엄마가 되기까지

마돈나의 가족은 조금 특별합니다. 여섯 명의 자녀가 서로 다른 이야기를 안고 한 가족이 되었거든요.

먼저 친자녀 둘. 1996년 태어난 큰딸 루르드(Lourdes)는 마돈나가 카를로스 레온과의 사이에서 낳았고, 2000년 태어난 아들 로코(Rocco)는 영화감독 가이 리치와의 사이에서 얻은 아이예요.

그리고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입양한 네 명의 아이가 있습니다. 아들 데이비드 반다(2008년 입양), 딸 머시 제임스(2009년 입양), 그리고 2017년 함께 가족이 된 쌍둥이 딸 에스테레와 스텔레. 마돈나는 말라위와 오랜 인연을 이어 오며 아동 지원 재단을 세우고 어린이 병원 건립에도 힘을 보태 왔어요. 아이들은 지금도 종종 말라위를 찾아 자신들의 뿌리를 기억한다고 합니다.

"가장 힘든 전투"였지만, 가장 소중한 것

여섯 아이의 엄마가 되는 길이 순탄하기만 했던 건 아니에요. 마돈나는 한 인터뷰에서 육아를 두고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건 가장 힘든 일이자, 가장 치열한 전투였어요.”

특히 입양 과정은 쉽지 않았어요. 가이 리치와 이혼한 뒤, 말라위 당국은 한때 그를 두고 "아이를 키울 자격이 없다"며 입양을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마돈나는 이를 성차별적 판단이라 여기며 법정에서 다퉜고, 결국 뒤집어 냈어요. 엄마가 되겠다는 그의 의지는 그렇게 단단했습니다.

그에게 엄마가 된다는 건 스스로를 치유하는 일이기도 했어요. 다섯 살에 어머니를 잃은 그는 "내가 갖지 못했던 엄마가 되어 줄 수 있다"고, 그래서 아주 치유적인 경험이라고 말했죠. 그리고 아이들을 향한 마음을 이렇게 남겼습니다.

“내 아이들은 내가 상상도 못 했던 길로 나를 이끌고, 열릴 줄 몰랐던 문을 열어 주었어요. 명성도, 부도, 깨뜨린 기록도 내가 가장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그것에는 결코 견줄 수 없어요.”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겠죠.

사실 마돈나는 자신의 삶에 주어진 조건들을 잘 알고 있어요. 세계적인 부와 명성, 남들은 갖기 어려운 자원. 미국 경제지 포브스(Forbes)는 그의 순자산을 약 8억 5,000만 달러로 추산하며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자수성가 여성' 명단에 올렸고, 자수성가 지수는 10점 만점에 9점을 매겼습니다. 커리어 통산 투어 수익은 약 14억 달러에 이르고요. 무엇보다 그는 1990년 여성 기업가로서는 처음으로 포브스 표지에 오른 인물이기도 해요. 이런 조건 위에서 여섯 아이를 키워 냈다는 사실은 솔직히 인정하고 넘어가야겠죠. 다만 그 자원을 '엄마가 되는 일'과 '한 나라의 아이들을 돌보는 일'로 돌렸다는 선택에는, 우리가 눈여겨볼 태도가 담겨 있습니다.

다시 태어나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

마돈나의 삶을 관통하는 단어가 '재창조'라면, 그 재창조의 목록에서 가장 뜻깊은 항목은 아마 '엄마'일지도 몰라요. 무대 위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듯, 그는 여섯 아이의 엄마로서도 매일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 갔습니다.

아이를 낳고 키운 뒤 마주한 세상은 이전과 같지 않죠. 마돈나에게도 그랬을 거예요. 하지만 그는 그 변화를 공백이 아니라 또 하나의 무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지금 아이 곁에서 하루하루를 살아 내고 있는 우리처럼요. 오늘의 육아가 조금 버겁게 느껴진다면, 40여 년을 다시 태어나며 여섯 아이를 품어 온 이 씩씩한 엄마의 이야기가 작은 응원이 되면 좋겠어요.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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