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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리샤 밀러 커버

미국에서 가장 사랑 받는 액세서리 브랜드를 창업한 세 아이 엄마 패트리샤 밀러

공룡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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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대합실에서 비행기를 기다려 본 적 있으신가요? 지루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대부분은 휴대폰을 들여다보거나 멍하니 사람들을 구경하죠. 그런데 1982년 애틀랜타 공항에서, 두 명의 이웃 아주머니는 전혀 다른 걸 보고 있었어요. 지나가는 여성들의 손에 들린 하나같이 칙칙하고 투박한 여행 가방들이었죠.

"왜 여자들을 위한 예쁜 가방은 없을까?" 이 사소한 질문 하나가, 훗날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패션 액세서리 브랜드 베라 브래들리(Vera Bradley)가 됩니다. 그리고 그 질문을 던진 두 사람 중 하나가, 세 아이의 엄마이자 전직 교사였던 패트리샤 밀러(Patricia R. Miller)였어요.

패트리샤 밀러
패트리샤 밀러 (사진: Wikimedia Commons (Noted Seven, CC BY-SA 3.0) · 베라 브래들리 매장) · 출처 보기

벽지를 바르다 만난 두 이웃

패트리샤 밀러는 화려한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었어요. 인디애나 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한 뒤(1960년), 그는 인디애나 곳곳의 학교에서 10년 가까이 아이들을 가르치던 평범한 선생님이었습니다.

인생을 바꾼 만남은 아주 우연히 찾아왔어요. 1975년, 시카고에서 인디애나주 포트웨인으로 막 이사 온 이웃 바버라 브래들리 백가드(Barbara Bradley Baekgaard)가 새 집에 벽지를 바르다 옆집에 도움을 청한 거죠. 그렇게 만난 두 사람은 금세 단짝이 되었고, 함께 벽지 사업 '업 유어 월(Up Your Wall)'을 시작했어요. 이어서 직접 디자인한 옷을 1년에 두 번 트렁크 쇼로 파는 일까지, 두 주부는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 파는 일에 점점 빠져들었습니다.

공항에서 시작된 250달러의 아이디어

그리고 1982년, 그 유명한 애틀랜타 공항 장면이 등장합니다. 여성 여행객을 위한 밝고 예쁜 가방이 세상에 없다는 걸 발견한 두 사람은, 각자 남편에게 250달러씩, 합쳐서 딱 500달러를 빌려 원단을 샀어요. 그해 11월, 베라 브래들리는 정식으로 회사가 됩니다.

브랜드 이름 '베라 브래들리'는 밀러가 아닌, 동업자 바버라의 어머니 성함에서 따왔어요. 이 회사가 얼마나 '가족 사업'으로 출발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죠. 첫 로고는 바버라의 10대 딸이 그렸고, 이름의 주인공인 어머니 베라는 플로리다에서 직접 영업 사원으로 뛰었습니다. 두 창업자는 탁구대 위에서 가방을 바느질하며 첫 제품을 만들었어요.

프랑스 프로방스풍의 알록달록한 퀼트 무늬는 곧 미국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가방에서 시작한 라인업은 지갑, 파우치, 의류, 향수, 주얼리로 뻗어 나갔고, 밀러는 1982년부터 2010년까지 회사의 공동 대표(Co-President)로 브랜드를 이끌었어요.

패트리샤 밀러
패트리샤 밀러 (사진: Wikimedia Commons (LovelyLillith, CC BY-SA 4.0) · 베라 브래들리 제품) · 출처 보기

상장까지, 그리고 다시 세상 밖으로

탁구대 위의 작은 바느질은 놀라운 속도로 자랐습니다. 2005년 무렵엔 직원 120여 명에 매출 약 1억 달러 규모로 성장했고, 2010년에는 나스닥에 상장(티커 VRA)되며 미국을 대표하는 상장 패션 브랜드가 됐어요. 회사는 최근까지도 연 매출 4억 달러 안팎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밀러가 회사 밖으로도 걸음을 넓혔다는 점이에요. 2005년부터 2006년까지 그는 회사를 잠시 떠나 인디애나주 최초의 상무부 장관(Secretary of Commerce)이자 인디애나 경제개발공사(IEDC) 대표를 맡았습니다. 가방을 만들던 손으로 이번엔 주(州)의 경제를 챙긴 셈이죠.

이런 발자취 덕분에 밀러는 포브스(Forbes)가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자수성가 여성(America's Richest Self-Made Women)' 명단에 이름을 올렸어요. 포브스가 집계한 그의 순자산은 약 3억 6천만 달러. 물려받은 재산이 아니라 스스로 일군 부라는 뜻의 '자수성가 점수'에서도 10점 만점에 8점을 받았습니다. 남편에게 빌린 250달러에서 시작한 이야기치고는, 꽤 근사한 결말이죠.

동업자를 고를 때부터 사업 파트너를 대할 때까지, 밀러가 늘 강조한 원칙은 의외로 단순했어요.

"사업은 대체로, 존경할 뿐 아니라 진짜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합니다."

친구를 잃고 시작한 또 하나의 사명

밀러의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나눔'이에요. 두 창업자는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난 소중한 친구 메리 슬론(Mary Sloan)을 기리며 베라 브래들리 유방암 재단(Vera Bradley Foundation for Breast Cancer)을 세웠습니다.

이 재단은 인디애나 대학교 사이먼 종합암센터의 유방암 연구에 5천만 달러를 약정했고, 골프와 피클볼 대회 같은 즐거운 이벤트만으로도 4천만 달러가 넘는 연구 기금을 모았어요. 예쁜 가방을 팔아 번 돈이, 다른 엄마와 딸과 친구를 살리는 연구로 이어진 거죠.

당신이 해낼 수 있는 일을, 과소평가하지 마세요

패트리샤 밀러의 삶에는 분명 든든한 뒷배가 있었어요. 종잣돈을 빌려준 남편, 흔쾌히 이름과 발품을 보탠 동업자의 가족까지.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특별한 건, 평범한 교사이자 세 아이의 엄마가 공항에서 스친 사소한 불편함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육아와 살림의 한가운데서도, 그는 "왜 없을까?"라는 질문을 사업으로, 그리고 세상을 바꾸는 나눔으로까지 밀고 나갔어요. 엄마가 된다는 건 세상과 멀어지는 일이 아니라, 세상을 더 세심하게 보는 눈을 얻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작은 아이디어 하나를 마음에 품고 있는 당신에게, 밀러의 이야기가 조용한 응원이 되길 바라요.

참고 자료
· Forbes, Patricia Miller 프로필
· Wikipedia, Vera Bradley
· Indiana University Tobias Leadership Center, Patricia Miller
· IU School of Medicine, Vera Bradley Found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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