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살에 4조 원 교육 유니콘을 세운 뒤 뇌졸중을 넘어선 쌍둥이 엄마, 레이첼 로머
"학비는 회사가 대신 내줄게요." 대학 등록금 앞에서 진학을 포기했던 수많은 직장인에게, 이 한 문장은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말이었어요. 매장 계산대에서, 물류 창고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회사 돈으로 학위를 따고 더 나은 자리로 옮겨갔거든요. 이 다리를 놓은 사람이 바로 레이첼 로머(Rachel Romer)예요.
서른넷에 4조 원짜리 교육 회사를 키워낸 창업가이자, 세 살배기 쌍둥이 딸을 키우던 워킹맘. 그리고 어느 여름날 갑작스러운 뇌졸중을 겪고, 지금은 다시 걷는 법을 배우고 있는 엄마이기도 해요. 화려한 성공담 뒤에 감춰진 진짜 이야기를, 오늘 <대단한 엄마들>에서 만나볼게요.

정치 명문가의 딸, 그 출발선을 솔직하게 말하다
레이첼 로머는 1988년, 미국 콜로라도의 이름난 정치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할아버지 로이 로머(Roy Romer)는 콜로라도 주지사를 세 번 연임한 인물이고, 아버지 크리스 로머 역시 주 상원의원을 지냈죠. 교육 정책과 학교 개혁은 이 집안의 오랜 관심사였어요.
그는 명문 스탠퍼드에서 학사와 교육학 석사, 그리고 MBA까지 마쳤어요. 학업 도중에는 오바마 캠프와 백악관 인사팀에서 일하기도 했고요. 누가 봐도 남다른 출발선이었죠. 로머는 이런 배경이 자신에게 보통 사람은 갖기 어려운 인맥과 기회라는 특권이었다는 점을 숨기지 않고 인정해요. 그래서 그의 회사가 향한 곳이 더 의미 있게 다가와요. 바로 그런 특권과 가장 거리가 먼 사람들, 등록금이 없어 배움을 미뤄둔 직장인들이었으니까요.
"학비는 회사가 냅니다", 길드 에듀케이션의 탄생
스탠퍼드 시절 로머는 미국의 낮은 대학 졸업률을 2년간 파고들었어요. 그러다 발견한 건 의외로 단순한 사실이었죠. 많은 직장인이 돈과 시간 때문에 배움을 포기한다는 것. 그렇다면 그 비용을 회사가 복지처럼 대신 내주면 어떨까?
2015년, 로머는 스탠퍼드 동료 브리트니 스티치와 함께 길드 에듀케이션(Guild Education)을 세웠어요. 기업과 대학을 연결해, 직원이 빚 없이 학위를 따거나 새 기술을 배우도록 돕는 회사였죠. 로머는 이걸 "복지로서의 교육(education as a benefit)"이라고 불렀어요.
모델은 빠르게 퍼졌어요. 월마트, 디즈니, 치폴레, 타깃, 로우스 같은 대기업들이 길드를 통해 직원 학비를 대기 시작했거든요. 창고 직원이 회사 돈으로 준학사 학위를 따고, 매장 매니저가 간호사 자격을 준비하는 일이 현실이 됐죠. 회사는 이직률을 낮춰서 좋고, 직원은 커리어가 열려서 좋은 구조였어요.
- 2017년: 로머와 공동창업자, 포브스 '30세 이하 30인(30 Under 30)' 교육 부문 선정
- 2019년: 기업가치 10억 달러(약 1조 원) 돌파, 유니콘 등극
- 2020년: CNBC 디스럽터 50, EY 올해의 기업가상 수상
- 2022년: 1억 7,500만 달러 추가 투자 유치, 기업가치 44억 달러(약 4조 4천억 원)
여성 창업가가 이끄는 회사 중 손꼽히는 가치였어요. 게다가 로머는 1,000명이 넘는 전 직원에게 회사 지분을 나눠주며, "함께 키우는 회사"라는 철학을 실천했죠.

쌍둥이 엄마가 된 CEO의 선택
2018년, 로머는 쌍둥이 딸의 엄마가 됐어요.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를 이끌면서 두 아이를 키우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죠. 이때 그가 내린 선택 하나가 훗날 회사의 운명을 지켜줘요.
출산휴가를 준비하던 로머는 2018년 비잘 샤(Bijal Shah)를 영입했어요. 자신이 자리를 비워도 회사가 흔들리지 않도록, 언제든 지휘봉을 넘길 수 있는 든든한 리더를 곁에 둔 거예요. 로머는 훗날 이렇게 말했어요.
"내 밑에 두터운 리더들의 층이 있다는 것, 그게 바로 이런 순간에 회사를 지켜주는 힘이에요."
엄마가 되며 배운 '혼자 다 짊어지지 않는 법'이, 창업가로서의 그를 더 단단하게 만든 셈이에요.
서른넷의 여름, 예고 없이 찾아온 뇌졸중
2023년 8월, 로머는 서른다섯 번째 생일을 며칠 앞두고 자택에서 쓰러졌어요. 다음 날 아침 그를 발견한 건 이모였죠. 병명은 뇌졸중, 뇌 왼쪽에 손상을 남긴 심각한 상황이었어요. 세 차례의 뇌 수술과 유도 혼수, 그리고 병원과 재활원에서 보낸 석 달의 시간이 이어졌어요.
그가 겪은 건 흔치 않은 형태의 뇌졸중이었어요. 오른쪽 팔과 다리에 마비가 왔지만, 많은 환자와 달리 말하고 이해하는 능력, 그리고 지식과 판단력은 그대로 남았거든요. 그가 쌓아온 총명함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어요. 다만 몸이 다시 배워야 할 것이 많았죠. 휠체어에 앉아, 걷는 법을 처음부터 익히는 일 같은 것들이요.
혼수에서 깨어난 로머가 아버지에게 건넨 첫 마디 중 하나는 회사 걱정이었대요. "비잘에게 연락해 주세요." 자신이 미리 준비해 둔 후계자에게, 이제 정말로 지휘봉을 넘길 때가 왔다는 걸 안 거예요. 2024년, 로머는 CEO 자리에서 물러났고 비잘 샤가 그 뒤를 이었어요. 5년 전 출산휴가를 위해 심어둔 씨앗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회사를 지켜낸 거죠.
4조 원 회사와 두 딸,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하루
포브스는 로머를 2023년 미국 자수성가 여성(America's Self-Made Women) 84위에 올렸어요. 이 목록에서도 손꼽히게 젊은 축이었죠. 당시 추정 순자산은 약 3억 2천만 달러(약 4천억 원). 온라인 교육이라는 '자수성가' 항목으로요.
하지만 회복기의 로머가 소중히 여기는 건 순위표의 숫자가 아니었어요. 한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키운 회사를 '또 하나의 아이(other child)'처럼 여겼다고 털어놨어요. 두 딸이 마지막 유치원 등원을 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사이, 자신은 병상에서 회사와 가족을 함께 그리워했던 시간을요. 그러면서도 그는 이렇게 말해요.
"저는 물이 반이나 남았다고 보는 사람이에요. 이 경험이 준 배움을 정말로 소중히 여기려 노력하고 있어요."
"많은 것을 돌아본 시간이었어요. 놓쳤던 것들을 따라잡으며, 무엇보다 가족에게 집중하고 있어요." 재활 중에도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공개했어요. 성공한 창업가의 완벽한 서사가 아니라,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한 사람의 이야기로요. 그 용기가 같은 병을 겪는 이들에게, 또 오늘을 버티는 수많은 엄마들에게 조용한 힘이 되고 있어요.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배우는 걸음
레이첼 로머의 이야기는 '무너지지 않는 성공'에 관한 것이 아니에요. 오히려 가장 단단해 보이던 사람도 넘어질 수 있고, 그 자리에서 다시 걸음마를 배울 수 있다는 이야기에 가깝죠. 수많은 직장인에게 배움의 다리를 놓아준 그가, 이제 자기 몸으로 '다시 배우는 법'을 증명하고 있어요.
남다른 출발선을 인정하는 정직함, 위기를 대비해 사람을 키워둔 지혜, 그리고 회복의 과정마저 솔직히 나누는 담대함. 엄마가 된 뒤에도, 큰 병을 겪은 뒤에도 로머의 성장은 멈추지 않았어요. 두 딸이 자라며 언젠가 이 이야기를 읽는다면, 분명 이렇게 느끼지 않을까요. 우리 엄마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요.
참고 자료
· Wikipedia, Rachel Romer
· Forbes, Rachel Romer Profile (2023 America's Self-Made Women)
· Forbes, 'Make Colleges Pay' (2019)
· Fortune, Guild founder Rachel Romer on lessons from stroke at 3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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