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1위 자산운용사 블랙록을 세운 세 아이 엄마 수잔 와그너
회의실 문을 열었는데, 그 안에 여자가 나 한 명뿐이었던 순간을 기억하는 엄마들이 있을 거예요. 숫자가 오가고 판이 커질수록, '내가 여기 있어도 되는 걸까' 하는 마음이 스칠 때요. 그런데 그 방에서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를 함께 세운 여성이 있습니다.
스물여섯 살에 동료들과 함께 창업해 세계 1위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을 만든 사람, 수잔 와그너(Susan Wagner)예요. 여덟 명의 창업자 중 유일한 여성이었고, 지금은 세 아이를 키운 엄마이기도 합니다. 오늘 <대단한 엄마들>에서는, 남자들만 가득했던 금융의 세계에서 자기 자리를 스스로 만들어낸 그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교육을 믿는 집에서 자란 소녀
수잔 와그너는 1961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났어요. 그가 자란 집은 배움과 성취를 깊이 믿는 가정이었다고 해요. 딸에게도 "여자니까"라는 말 대신 "네가 원하는 만큼"이라는 기대를 걸어준 환경이었죠.
그는 1982년 명문 여자대학 웰즐리 칼리지(Wellesley College)를 우등으로 졸업했어요. 전공은 영문학과 경제학. 이어 시카고대학교에서 금융 MBA를 받았습니다.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배경이 있었다는 건 솔직하게 짚고 넘어갈게요. 다만 그 기회를 어디로 끌고 갈지는 온전히 그의 선택이었어요. 졸업 후 그는 당시 여성이 드물던 월가로 향했고, 리먼 브라더스(Lehman Brothers)의 모기지 금융 부서 부사장으로 일했습니다.
스물여섯, 안정된 자리를 걷어차고
1988년, 스물여섯 살의 수잔은 인생에서 가장 큰 모험을 합니다. 잘나가던 리먼 브라더스를 나와 동료들과 함께 새 회사를 차린 거예요. 훗날 블랙록이 되는 이 회사의 창업자는 모두 여덟 명, 그중 여성은 수잔 한 명뿐이었습니다.
왜 그런 위험을 감수했느냐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답했어요.
"우리는 서로를 믿는 모험을 택했어요. 자본시장의 성장과 리스크 관리의 필요성에 대한 우리의 직감을 믿기로 한 거죠."
안정 대신 서로에 대한 신뢰를 택한 이 결정을, 그는 인생 최고의 직업적 선택이라고 말합니다. 회사에서 수잔은 최고운영책임자(COO)와 부회장을 맡아, 눈에 잘 띄지 않지만 회사의 뼈대를 세우는 일을 도맡았어요.
세계 1위 회사를 만든 '딜'의 설계자
수잔의 진짜 무기는 인수합병(M&A)이었어요. 그는 퀠로스(Quellos), 메릴린치 자산운용, 그리고 결정적으로 2009년 바클레이스 글로벌 인베스터스(BGI) 인수를 직접 이끌었습니다. 이 딜로 블랙록은 단숨에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로 올라섰어요. 오늘날 블랙록이 굴리는 자산은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지만, 그 토대에는 수잔이 설계한 이 합병이 있었죠.
그는 회사를 아시아, 중동, 브라질로 넓히는 일도 진두지휘했어요. 남들이 '조용한 살림꾼'으로만 볼 때, 정작 회사의 지도를 다시 그린 사람이 바로 수잔이었던 거예요.

세 아이의 엄마로, 그리고 다시 자기 이름으로
수잔은 1988년 찰스 와그너와 결혼해 세 아이를 키운 엄마이기도 해요. 뉴욕 교외 마운트 키스코에 살며, 세계에서 가장 바쁜 금융 회사의 부회장직과 세 아이의 육아를 함께 짊어졌습니다. 그가 커리어와 가정 이야기를 요란하게 내세우지 않는다는 점이 오히려 인상적인데요. 대신 그는 자신의 힘의 원천을 이렇게 표현했어요.
"저를 끊임없이 일깨워 준 건 4대에 걸친 여성들(그리고 남성들)이에요. 그들의 성취, 품위, 강인함, 희망과 꿈이요."
2012년, 그는 24년을 함께한 블랙록에서 은퇴합니다. 하지만 일에서 완전히 물러난 건 아니었어요. 그는 지금도 블랙록 이사회에 남아 있고, 2014년에는 애플(Apple) 이사회에 합류했습니다. 당시 그는 애플 이사 중 유일하게 금융 전문성을 가진 인물이었어요. 이 밖에도 데이터 기업 삼사라(Samsara), 헬스케어 기업 컬러 헬스(Color Health) 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포브스가 주목한 '자수성가 여성'
수잔의 발자취는 숫자로도 또렷하게 남았어요. 포브스(Forbes)는 2025년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자수성가 여성 100인'에 그를 66위로 올렸습니다. 추정 순자산은 약 5억 6천만 달러. 상속이 아니라 스스로 일군 부라는 뜻의 '자수성가 점수'에서도 8점(만점에 가까운 상위)을 받았어요.
그는 후배 여성들에게 늘 같은 이야기를 건넵니다. 블랙록 시절 사내 여성 네트워크의 글로벌 스폰서를 자처했던 그의 조언은 이렇게 요약돼요.
- 기대치를 높게 잡으세요.
-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가지세요.
- 원하는 것을 분명히 요구하세요.
- 당신의 야망을 지지해 줄 후원자(champion)를 찾으세요.
그는 여성이 리더가 되기 어려운 가장 큰 장벽으로 '비현실적인 기대'를 꼽으며, 승진이 '작은 나(mini-me)'가 되는 것에 달려선 안 된다고 말했어요. 나를 지우고 남을 흉내 낼 필요가 없다는, 단단한 응원이죠.
내 자리는 내가 만드는 것
수잔 와그너는 웰즐리 칼리지 2014년 졸업식 연사로 후배들 앞에 섰고, 2023년에는 유엔에서 '여성 창업의 날' 파이어니어상을 받았어요. 최근에는 모교에 자신의 이름을 딴 '수잔 L. 와그너 센터'를 세워, 다음 세대 여성들이 세상으로 나아갈 길을 넓히고 있습니다.
남자들만 가득한 방에서 유일한 여성으로 시작해, 세계 1위 회사를 함께 세우고, 세 아이를 키우고, 이제는 후배들의 등을 밀어주는 사람. 수잔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남기는 건 화려한 부의 액수가 아니라, "내 자리는 누가 내어주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드는 것"이라는 태도예요. 오늘도 각자의 방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엄마들에게, 이 이야기가 조용하지만 씩씩한 힘이 되길 바랍니다.
참고 자료
· Forbes, Susan Wagner Profile (America's Richest Self-Made Women)
· Wikipedia, Susan Wagner
· TIME, Five Questions for Fortune's 50 Most Powerful Women
· Wellesley College, 2014 Commencement Address, Sue Wagner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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