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 살 난민에서 실리콘밸리 첫 여성 억만장자 투자자로, 두 아이 엄마 테레지아 고우
혹시 이런 생각, 해보신 적 있으세요?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면 문득 "나는 지금 어디쯤 서 있는 걸까" 싶은 순간이요. 세상은 빠르게 돌아가는데, 나만 잠시 멈춰 선 것 같은 그런 기분 말이에요.
오늘 소개할 테레지아 고우(Theresia Gouw)는, 세 살 때 난민으로 미국 땅을 밟은 이민자 가정의 딸에서 실리콘밸리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 억만장자 벤처투자자가 된 사람이에요. 페이스북이 대학교 기숙사에서 막 태어났을 때 그 가능성을 알아본 초기 투자자였고,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운 엄마이자 벤처캐피털 회사 두 곳을 세운 창업자이기도 하죠. 그녀의 이야기는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라, 낯선 자리에서 자기만의 길을 그려낸 한 사람의 기록이에요.

세 살, 낯선 나라에 도착한 아이
테레지아 고우는 1968년 인도네시아에서 중국계 가정의 딸로 태어났어요. 그런데 그녀가 아주 어렸을 때, 인도네시아에서는 수하르토 정권 아래 화교(중국계 주민)를 겨냥한 정치적 폭력이 벌어지고 있었어요. 가족은 결국 인도네시아를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우리는 화교들이 표적이 되던 정치적 격변의 끝자락에 그 나라를 떠났어요."
세 살이었던 테레지아와 가족이 도착한 곳은 뉴욕주 북부, 버팔로 인근의 작은 블루칼라 마을이었어요. 인도네시아에서 치과의사였던 아버지는 미국에서 자격을 다시 인정받기 위해 접시닦이로 일하며 뉴욕주립대 버팔로 캠퍼스(SUNY Buffalo)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고, 어머니는 간호사로 일했습니다. 부모가 배운 사람들이었다는 점은 분명 그녀에게 든든한 밑바탕이 되었지만, 이민 1세대로서 밑바닥부터 다시 쌓아 올려야 했던 현실 또한 온 가족이 함께 겪은 것이었죠.
"아버지는 접시닦이로 일하면서, 미국에서 치과 진료를 하기 위해 다시 학교로 돌아가 자격증을 땄어요."
그런 환경에서 자란 테레지아는 자기 고등학교에서 브라운대학교에 진학한 최초의 학생이 되었어요. 그리고 그곳에서 공학을 전공하며, 1990년 우등(magna cum laude)으로 졸업합니다.
엔지니어에서 '어둠의 세계' 벤처투자자로
대학을 졸업한 뒤 테레지아는 경영 컨설팅 회사 베인앤컴퍼니(Bain & Company)에서 일했고, 1990년대 중반에는 소프트웨어 결제 기술 스타트업 릴리스 소프트웨어(Release Software)를 공동 창업하기도 했어요. 이후 1996년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마쳤습니다.
공학도이자 창업 경험까지 갖춘 그녀에게, 한 멘토는 이렇게 권유했다고 해요.
"엔지니어링 스타트업에 몸담아봤고, 공학 학위도 있잖아. 이제 '어둠의 세계(벤처투자)'로 넘어와 봐."
1999년, 테레지아는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 명가 액셀 파트너스(Accel Partners)에 합류했어요. 남성 일색이던 이 업계에서 그녀는 액셀의 첫 여성 파트너, 나아가 첫 여성 매니징 파트너가 되며 15년을 일합니다. 그리고 2005년, 마크 저커버그의 기숙사 방에서 갓 태어난 무명의 소셜네트워크에 액셀이 투자하는 결정적 순간에 핵심 역할을 하죠. 바로 페이스북이었어요.
- 당시 그녀가 주목한 건 화려한 지표가 아니라, 사용자들이 매일 이 서비스에 돌아오는 '일간 활성 사용량'이었어요. "그때까지 페이스북 같은 건 본 적이 없었다"고 그녀는 회상합니다.
- 이후에도 그녀는 보안·엔터프라이즈·핀테크 등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단단한 기술 기업들을 알아보는 안목으로 이름을 알렸어요.

여성이 여성에게 투자한다는 것
15년간 쌓은 명성 위에서, 테레지아는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택했어요. 2014년, 그녀는 제니퍼 폰스타드와 함께 애스펙트 벤처스(Aspect Ventures)를 세웁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손꼽히는 여성이 이끄는 초기 단계 벤처 펀드 중 하나였죠. 그리고 2019년에는 다시 에이크루 캐피털(Acrew Capital)을 공동 창업해, 핀테크·헬스테크·사이버보안 스타트업에 투자하며 약 17억 달러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어요.
테레지아가 특별한 이유는 단지 돈을 잘 벌어서가 아니에요. 그녀는 업계의 다양성을 넓히는 일에 자기 자원을 실제로 쏟아부었습니다.
- 창업 동료의 83%를 여성과 유색인종으로 꾸린 에이크루 캐피털
- 벤처업계 여성의 성장을 돕는 비영리단체 올 레이즈(All Raise) 공동 설립
- 소수집단 출신 창업자를 위한 디버시파이 캐피털 펀드, 다양성 중심 재간접펀드 퍼스트 클로즈 파트너스 설립
- 흑인 대학(HBCU)과 벤처캐피털을 연결하고, 피스크대학의 벤처펀드 참여를 위해 100만 달러를 기부
"제 직업적 열정과, 기술 업계의 더 나은 다양성과 포용을 향한 개인적 열정을 하나로 모을 수 있어 정말 신이 나요."
이런 뚝심 덕분에 그녀는 포브스가 인정한 미국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 억만장자 벤처투자자가 되었어요. 2025년 기준 그녀의 순자산은 약 12억 달러(약 1조 6천억 원)로 추정됩니다. 뿐만 아니라 벤처투자자에게 최고의 영예로 꼽히는 포브스 마이더스 리스트(Midas List)에 아홉 차례 이름을 올렸고, 타임지가 뽑은 '기술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40인'에도 선정됐죠. 다양성에 대한 반발(백래시)이 거세지는 흐름 속에서도, 그녀는 자신의 길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두 걸음 나아가고, 한 걸음 물러서는 거예요." 흔들려도 결국 앞으로 간다는 뜻이에요.
두 아이를 키우며, 버팔로로 돌아오다
이 모든 커리어를 쌓아 올리는 동안, 테레지아는 두 아이를 키운 엄마이기도 했어요. 화려한 성취의 이면에는, 남성 중심 업계에서 여성이자 워킹맘으로 하루하루를 꾸려간 시간이 있었죠. 2013년 이혼을 겪으며 삶의 국면이 바뀌기도 했지만, 그녀는 커리어도 아이들도 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024년, 그녀는 자신이 자란 도시와 다시 이어지는 특별한 선택을 해요. 미식축구팀 버팔로 빌스(Buffalo Bills)의 지분 일부를 사들이는 투자자 컨소시엄에 합류한 거예요. 세 살 난민으로 도착했던 버팔로 인근의 작은 마을, 그 도시의 상징적인 팀에 오너 중 한 사람으로 돌아온 셈이죠. 시작점으로 되돌아온 이 한 바퀴가, 그녀가 걸어온 길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요.
공백이 아니라, 또 하나의 도전
테레지아 고우의 이야기에서 제가 가장 마음에 남는 건, 그녀가 늘 '가장 먼저인 자리'에 섰다는 점이에요. 고등학교에서 처음으로 브라운에 간 학생, 액셀의 첫 여성 파트너, 미국 최초의 여성 억만장자 벤처투자자. 아무도 밟지 않은 자리는 늘 낯설고 외롭지만, 그녀는 그 낯섦을 두려워하는 대신 자기 뒤에 오는 사람들을 위한 길로 바꿔놓았어요.
아이를 키우며 세상과 새롭게 마주하는 지금의 나날도, 어쩌면 그런 '처음'의 순간일지 몰라요. 멈춰 선 게 아니라, 아직 아무도 가보지 않은 나만의 길 앞에 서 있는 거니까요. 한 생명을 키워낸 그 탁월한 경험을 밑천 삼아, 우리 모두 각자의 '처음'을 씩씩하게 열어가면 좋겠어요.
참고 자료
· 위키피디아 — Theresia Gouw
· 포브스 프로필 — Theresia Gouw
· Forbes(2025) — Meet Venture Capital's First Woman Billionaire
· Forbes(2018) — How Theresia Gouw Became America's Richest Female Venture Capita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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