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방 식탁에서 시작한 반도체 대기업 마벨! 두 아들 키운 공동창업자 웨일리 다이
아이를 재우고 난 늦은 밤, 식탁 위에 노트북을 펼쳐 본 적 있으신가요? 낮에는 아이의 세계에 온전히 머물고, 밤이 되어서야 겨우 나의 일을 마주하는 시간. 그 좁은 식탁이 누군가에게는 세계적인 회사가 태어난 첫 사무실이기도 했습니다.
상하이에서 농구 선수를 꿈꾸던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열일곱에 영어사전 하나를 손에 쥔 채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 그리고 두 아들의 엄마. 그는 남편과 함께 주방 식탁에서 반도체 회사 마벨 테크놀로지(Marvell Technology)를 세웠고, 세계 반도체 업계에서 손에 꼽히는 여성 공동창업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만나볼 대단한 엄마, 웨일리 다이(Weili Dai)의 이야기입니다.

상하이 농구 코트에서 배운 것
웨일리 다이는 1961년 무렵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엔지니어, 어머니는 간호사였어요. 어릴 적 그는 책상 앞보다 운동장에 있는 걸 더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배드민턴, 달리기, 멀리뛰기를 두루 하다가 아홉 살부터 열네 살까지는 세미프로 농구 선수로 뛰었습니다. 한때는 프로 농구 선수를 진지하게 꿈꾸기도 했지요.
훗날 그는 이 시절이 자신을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승부를 겨루고, 팀을 이루고, 매일 몸을 단련하던 그 경험이 사업가로서의 밑바탕이 되었다는 거예요.
“그 시간이 저에게 자신감과 건강, 규율, 그리고 팀워크라는 개념을 길러주었어요. 물론 가족이 키워준 마음이 진짜 토대가 되었고요.”
여기서 솔직하게 짚어둘 부분이 있습니다. 웨일리 다이는 엔지니어 아버지를 둔, 비교적 안정된 가정에서 자랐고 훗날 창업 자금도 가족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출발선은 아니었지요. 다만 그가 운동으로 다진 승부 근성과 성실함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낸 태도만큼은, 어떤 자리에 있든 배울 만한 대목입니다.
사전을 들고 온 열일곱, 버클리에서 컴퓨터를 만나다
1979년, 열일곱 살의 웨일리 다이는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합니다. 낯선 나라, 낯선 언어. 영어가 서툴렀던 그는 중국어-영어 사전을 늘 손에 들고 다녔다고 해요. 샌프란시스코의 에이브러햄 링컨 고등학교를 거쳐, 그는 명문 UC 버클리에 진학해 컴퓨터과학을 전공합니다. 운동장을 누비던 소녀가 코드의 세계로 걸어 들어간 순간이었습니다.
대학 시절, 그는 스스로 “엔지니어와 괴짜들의 모임”이라 표현한 환경 속에서 미래의 남편이자 동업자가 될 세하트 수타르자(Sehat Sutardja)를 만납니다. 그는 남편을 두고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일에 큰 열정을 가진 사람”이라고 회상했어요. 두 사람은 1985년 결혼합니다.
졸업 후 웨일리 다이는 캐논(Canon)의 미국 연구소에서 소프트웨어 개발과 프로젝트 관리 업무를 맡으며 실무 감각을 쌓아 갑니다. 훗날 그는 UC 버클리 공과대학 졸업식에서 축사를 한 첫 여성 연사가 됩니다.

주방 식탁에서 시작한 마벨
1995년, 웨일리 다이는 남편 세하트, 그리고 시동생 판타스와 함께 반도체 회사를 창업합니다. 시작은 거창한 사옥이 아니라 집 주방 식탁이었어요. 종잣돈은 가족이 모은 35만 달러. 회사 이름은 “경이로운(marvelous) 제품을 만들겠다”는 마음을 담아 마벨(Marvell)로 지었습니다.
역할은 자연스럽게 나뉘었습니다. 남편 세하트가 360건이 넘는 특허를 쌓으며 기술을 이끌었다면, 웨일리 다이는 사업 전략과 글로벌 파트너십, 시장 확장을 책임졌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세계를 바라봤어요.
“우리는 경이로운 회사가 되고 싶었어요. 크게 성장하고 오래 성공하려면 처음부터 글로벌한 관점을 아주 깊이 고민해야 한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었죠.”
마벨은 하드디스크와 통신 칩을 시작으로 성장해, 스마트폰과 데이터센터 시대의 핵심 반도체 기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웨일리 다이는 오랫동안 세계 대형 반도체 기업의 유일한 여성 공동창업자로 불렸습니다. 그는 기술이 힘 있는 사람들만의 것이 되지 않도록, 개발도상국 어린이들에게 노트북을 보급하는 ‘원 랩톱 퍼 차일드(One Laptop Per Child)’ 운동을 지지했고, STEM 분야로 나아가는 여성들을 꾸준히 응원해 왔습니다.
두 아들의 엄마이자 사장님
회사를 키우는 동안 웨일리 다이는 두 아들을 키우는 엄마이기도 했습니다. 세계를 상대로 협상하고, 파트너를 만들고, 밤낮없이 일하면서요. 그는 자신의 하루를 “48시간”이라 부를 만큼 새벽 6시부터 저녁 늦게까지, 주말에도 일했다고 말합니다.
그 치열함을 지탱한 원칙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부모님에게서 배운 ‘공정하게, 그리고 진심으로 살펴라(fair and care)’라는 태도였어요. 그는 이것을 자신의 “성공 비결”이라 불렀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주변 사람에게 공정해야 하고, 진심으로 아끼며 어떻게 가치를 더할지 고민해야 해요.”
일과 육아를 완벽히 반반으로 나눴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도, 세계적인 회사를 키우는 일도 모두 자신의 온 힘을 쏟아부어야 하는 일이라는 것. 그가 남긴 한 문장은 두 세계를 오가는 많은 엄마들의 마음과 맞닿아 있습니다.
“열정을 따른다는 건, 매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기꺼이 쏟아붓겠다는 마음이에요.”
주방 식탁에서 시작한 이 도전은 놀라운 결실을 맺었습니다. 포브스(Forbes)에 따르면 2026년 7월 기준 웨일리 다이의 순자산은 약 44억 달러로, 전 세계 부자 순위 900위권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포브스는 2022년부터 그를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자수성가 여성들’ 명단에 올렸고, 자수성가 점수는 10점 만점에 8점을 매겼어요. 반도체 하나로, 이민자 소녀가 스스로 일궈 낸 자리였습니다.
물론 길이 순탄하기만 했던 건 아닙니다. 2016년 웨일리 다이와 남편은 회계 관련 내부 조사 과정에서 회사를 떠나야 했습니다(조사 결과 부정행위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어요. 2018년 AI 스타트업 밋카이(MeetKai)를, 2021년에는 반도체 패키징 기업 실리콘 박스(Silicon Box)를 공동 창업하며 새로운 도전을 이어 갔습니다. 2024년 오랜 동반자였던 남편 세하트를 떠나보내는 슬픔 속에서도, 그는 여전히 자신의 길 위에 서 있습니다.
다시, 그 좁은 식탁을 바라보며
웨일리 다이의 이야기가 특별한 건 순자산의 규모 때문만은 아닙니다. 서툰 영어로 사전을 들고 다니던 열일곱의 이민자가, 두 아이를 키우면서도 세계를 상대로 자신의 회사를 세웠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는 엄마가 되는 일과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일을, 어느 하나 포기하지 않고 끌어안았습니다.
오늘 밤에도 아이를 재우고 식탁 앞에 앉을 당신에게, 그 좁은 식탁이 결코 작지 않다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지금 쏟는 모든 힘은 어딘가로 이어지고 있으니까요. 매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기꺼이 내어 주는 그 마음이야말로, 가장 대단한 시작입니다.
참고 자료
Forbes, Weili Dai 프로필
Wikipedia, Weili Dai
Forbes, From Shanghai to San Francisco: How Weili Dai's Marvell Masters The Semiconductor Industry
VnExpress International, How Marvell co-founder Weili Dai went from a Chinese immigrant with little English to one of US's richest self-made women
대단한 엄마들의 이야기, 더 읽어볼까요?

“왕관은 차고에 두고 오렴” 펩시코 최초 이민자 여성 CEO, 두 딸의 엄마 인드라 누이

메타(페이스북/인스타그램) COO이자 두 아이 엄마, 셰릴 샌드버그

아들 안고 나스닥 종을 울린 범블 창업자, 휘트니 울프 허드

네이버 대표도 워킹맘! 국내 최대 IT 기업을 이끄는 엄마, 최수연 크루 - 대단한 엄마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