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전 정보는 모두의 것! 23andMe 창업자이자 두 아이 엄마, 앤 보이치키
혹시 이런 순간이 있으셨나요? 병원에서 낯선 검사 결과지를 받아 들고, 이게 무슨 뜻인지 나만 모르는 것 같아 답답했던 순간이요. 내 몸에 대한 정보인데 정작 나는 알 수 없는 그 벽 앞에서, 한 사람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왜 내 유전 정보는 내가 가질 수 없지?"
그 질문 하나로 세계 개인 유전체 시대의 문을 연 사람이 있습니다. 유전자 검사 기업 23andMe의 공동 창업자, 앤 보이치키(Anne Wojcicki). 두 아이를 키운 엄마이자, 회사가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선 개척자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물리학자 아버지, 그리고 실리콘밸리에서 자란 세 자매
앤 보이치키는 1973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스탠리 보이치키는 스탠퍼드대 물리학과 교수였고, 어머니 에스더 보이치키는 교육자이자 저널리스트였어요. 세 자매가 나고 자란 집은 스탠퍼드 캠퍼스 안. 훗날 이 집 차고를 잠시 빌려 쓴 두 청년이 바로 구글을 창업한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었습니다.
자매들의 면면도 남달랐습니다. 큰언니 수전 보이치키는 훗날 유튜브 CEO가 되었고, 또 다른 자매 재닛은 인류학·역학 연구자가 되었어요. 앤은 예일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하며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선수로도 뛰었습니다. 승부와 과학, 두 세계를 모두 좋아하는 사람이었죠.
졸업 후 그는 월가로 향해 4년간 바이오테크 분야 헬스케어 투자 분석가로 일합니다. 하지만 돈의 논리로만 굴러가는 의료 산업에 점점 실망했어요. "건강 관리는 지극히 엘리트주의적인 시스템"이라고 느꼈거든요. 그는 결국 안정된 월가를 떠납니다.
월가를 떠나, 유전자를 사람들 손에 쥐여주다
2006년, 앤은 린다 에이비, 폴 쿠센자와 함께 23andMe를 창업합니다. 이름은 인간의 23쌍 염색체에서 따왔어요. 침을 담은 작은 튜브를 우편으로 보내면, 조상·건강 위험 정보가 담긴 유전자 리포트가 돌아오는 서비스. 전문가만 다루던 유전 정보를 보통 사람의 손에 직접 쥐여준 발상이었습니다. 2008년 타임지는 이 검사 키트를 '올해의 발명품'으로 꼽았어요.
“개인 유전 정보를 민주화해서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 중요합니다.”
물론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2013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의학적 검증을 이유로 건강 리포트 판매를 중단시켰어요. 앤은 규제 당국과 정면으로 마주 앉아 데이터를 쌓고 절차를 밟았고, 몇 해 뒤 다시 승인을 받아냈습니다. 2018년에는 제약사 GSK로부터 3억 달러 투자를 유치하며 신약 개발이라는 더 큰 그림으로 나아갔어요.

두 아이의 엄마, 그리고 매일 아침 문 앞의 문제들
앤은 2007년 구글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과 결혼해 두 아이를 낳았고, 2015년 이혼한 뒤에는 아이들을 키우며 회사를 이끌었습니다. 아이들의 사생활은 조용히 지켜온 편이에요.
일과 육아를 동시에 감당하는 마음을, 그는 거창하게 포장하지 않았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회사의 난제를 어떻게 푸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어요.
“문제를 풀어야죠. 등교 시간에 아이를 어떻게 문밖으로 내보낼까 고민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그저 더 큰 버전의 같은 문제일 뿐이에요.”
거대한 바이오테크 기업을 이끄는 일도, 아침마다 아이 신발을 신기는 일도 결국 '눈앞의 문제를 하나씩 푸는 일'이라는 이 감각. 육아로 단련된 문제 해결력이 경영과 결코 별개가 아니라는 걸, 그는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숫자로 본 앤 보이치키
포브스는 앤 보이치키를 '미국 자수성가 여성(America's Self-Made Women)' 명단에 올렸습니다. 물려받은 부가 아니라 스스로 일군 성취라는 뜻의 자수성가 점수는 10점 만점에 7점. 부의 원천은 간결하게 'DNA 검사'로 적혀 있어요.
- 2021년 리처드 브랜슨의 SPAC를 통한 상장 당시 23andMe 기업가치 약 35억 달러
- 포브스 추정 개인 순자산 약 2억 7천만 달러(2023년 기준)
- 2018년 GSK로부터 유치한 신약 개발 투자 3억 달러
다만 이 숫자들은 정점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화려한 상장 이후, 회사는 곧 가장 혹독한 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개척자의 두 번째 챕터
상장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유전자 검사 시장의 성장은 둔화됐고, 신약 개발은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했어요. 한때 하늘을 찌르던 주가는 고점 대비 약 99%까지 빠졌습니다. 그리고 2025년 3월, 23andMe는 결국 챕터11 파산보호를 신청했고, 앤은 CEO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자신이 세운 회사가 법정 관리로 넘어가는 순간이었어요.
많은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을 겁니다. 하지만 앤은 물러서지 않았어요. 그는 비영리 연구기관 TTAM을 세우고, 파산 경매에 직접 뛰어듭니다. 대형 제약사 리제네론(2억 5,600만 달러)을 넘어서는 3억 500만 달러를 써내며 회사의 핵심 자산을 되찾았고, 2025년 7월 법원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외부 투자자 없이 자신의 재산으로 채운 금액이었어요.
주목할 대목은 '되찾은 방식'입니다. 그는 회사를 다시 비영리 기관으로 전환하며 이용자 유전 데이터의 보호를 최우선 약속으로 내걸었어요. 실패를 덮는 대신, 처음 품었던 질문("유전 정보는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으로 되돌아간 셈입니다.
큰언니 수전을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까지 겪은 해였습니다. 그럼에도 앤 보이치키는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개척자가 왜 개척자인지를 증명했어요. 완벽한 성공담이 아니라, 넘어지고 다시 서는 과정 전체가 그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회복력은, 오늘도 눈앞의 문제를 하나씩 풀어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니까요.
참고 자료
· Forbes — Anne Wojcicki 프로필(America's Self-Made Women)
· Wikipedia — Anne Wojcicki
· Britannica Money — Anne Wojcicki
· STAT — 23andMe is won back by Anne Wojcicki and will become a nonprofit (2025)
· CNBC — Anne Wojcicki to buy back 23andMe for $305 million (2025)
대단한 엄마들의 이야기, 더 읽어볼까요?

메타(페이스북/인스타그램) COO이자 두 아이 엄마, 셰릴 샌드버그

아들 안고 나스닥 종을 울린 범블 창업자, 휘트니 울프 허드

돌쟁이 아기를 홀로 키우며 핀테크 제국을 세운 싱글맘, 제니 저스트

“왕관은 차고에 두고 오렴” 펩시코 최초 이민자 여성 CEO, 두 딸의 엄마 인드라 누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