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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스 피셔 커버

패션 브랜드 갭(GAP)을 창업한 세 아들의 엄마 도리스 피셔

공룡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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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옷장 문을 열고 "오늘 뭐 입지" 하고 한참을 서 있어 본 적, 다들 있으시죠. 딱 맞는 청바지 하나 찾는 게 왜 그렇게 어려운지. 사실 지금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걸치는 '데님에 티셔츠' 차림이 하나의 문화가 되기까지는, 그 불편을 그냥 넘기지 않은 한 부부가 있었어요.

1969년 샌프란시스코의 작은 청바지 가게에서 시작해 전 세계 3,500개 매장의 글로벌 패션 기업 갭(Gap)을 키워낸 사람, 도리스 피셔(Doris Fisher). 그는 브랜드의 이름을 지은 사람이자, 갭의 '감각'을 30여 년간 책임진 머천다이저였고, 동시에 세 아들을 키운 엄마였습니다. 2026년 5월, 94세로 세상을 떠난 그의 이야기를 함께 들여다볼까요.

도리스 피셔
도리스 피셔 (사진: Wikimedia Commons (Coolcaesar, CC BY-SA 4.0) · 샌프란시스코 갭 본사) · 출처 보기

스탠퍼드 경제학과의 몇 안 되던 여학생

도리스 피셔는 1931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하버드에서 공부한 변호사이자 캘리포니아 주의원이었어요.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건 분명한 사실이고, 이건 솔직하게 짚고 가야 할 부분입니다. 다만 그 안에서도 그는 '인정받고 싶은 둘째 아이'였다고 훗날 회상했어요.

훗날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언니가 있는 중간 아이였어요. 그저 부모님을 자랑스럽게 해드리고, 저를 봐주셨으면 했어요. 특히 아버지가요."

그는 스탠퍼드 대학교에 진학해 경제학을 전공했는데, 당시 경제학 학위를 받은 몇 안 되는 여성 중 한 명이었습니다. 1953년 졸업하던 해에 오래 알고 지내던 도널드 피셔(Donald Fisher)와 결혼했고, 이 파트너십은 도널드가 세상을 떠난 2009년까지 이어졌어요.

"청바지 하나 제대로 사기가 어려워서요"

갭의 시작은 거창한 사업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남편 도널드가 자기 몸에 맞는 청바지를 도무지 찾을 수 없어 답답해했던 것, 딱 그 지점에서 출발했어요. 두 사람이 세운 목표는 단순했습니다. "청바지 한 벌 사는 걸 더 쉽게 만들자."

1969년, 부부는 샌프란시스코 오션 애비뉴에 첫 매장을 열었습니다. 자금은 6만 3천 달러를 모아 마련했고, 처음엔 리바이스 청바지와 레코드판, 카세트테이프를 함께 팔았어요. 젊은 손님들을 겨냥한 가게였죠.

브랜드 이름에는 재미있는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도널드가 처음 제안한 이름은 'Pants and Discs(바지와 음반)'였는데, 도리스가 단칼에 반대했어요. 대신 그는 그 시절 세대를 규정하던 단어, '세대 차이(generation gap)'에서 딴 '갭(Gap)'을 골랐습니다. 브랜드의 정체성이 곧 그의 감각에서 나온 셈이죠.

도리스 피셔
도리스 피셔 (사진: Wikimedia Commons (Nielsoncaetanosalmeron, CC BY 4.0) · 갭·올드네이비 매장) · 출처 보기

머천다이저 도리스, 갭의 취향을 만든 사람

가게 문을 연 첫날부터 2003년까지, 도리스 피셔는 회사의 머천다이저로 일했습니다. 무엇을 들여올지, 어떤 옷이 매대에 걸릴지를 감각으로 판단하는 자리였어요. 아들 로버트는 아버지 도널드가 "어머니의 스타일과 취향에 의지했다"고 전했습니다.

그 감각 위에서 갭은 무섭게 성장했습니다. 매출 150억 달러가 넘는 기업, 전 세계 3,500개 이상의 매장으로 커졌고, 바나나 리퍼블릭·올드 네이비·애슬레타 같은 브랜드까지 품게 됐어요. 도리스는 2003년 머천다이저에서 물러난 뒤에도 2009년까지 이사회에 남았고, 이후에는 명예 종신이사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세 아들, 그리고 이어지는 가업

도리스와 도널드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로버트, 윌리엄, 존. 세 사람은 지금도 갭 인코퍼레이티드의 경영과 이사회에 참여하며 부모가 세운 회사를 이어가고 있어요. 막내 존은 메이저리그 야구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구단주이기도 합니다. 열 명의 손주와 열세 명의 증손주까지, 그가 남긴 것은 브랜드만이 아니었죠.

갭의 전 CEO 소니아 신갈은 도리스를 이렇게 기억했습니다.

"공동창업자이자, 회사의 첫 워킹맘이었고, 원조 '쿨'의 기준이었습니다. 그는 시대를 앞서간 사람이었어요."

신갈은 두 사람이 1969년 첫 매장을 '동등한 파트너로서' 열었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습니다. 여성이 사업의 전면에 서는 일이 흔치 않던 시절, 도리스는 아내이자 엄마이면서 동시에 브랜드의 취향을 책임지는 경영자였어요.

1,100점의 미술과 "우리는 언제나 더 할 수 있어요"

피셔 부부는 1970년대 중반, 사무실을 꾸미려 판화를 사 모으다가 미술의 세계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렇게 모은 컬렉션이 앤디 워홀, 게르하르트 리히터, 엘스워스 켈리, 리처드 세라 등 185명 작가의 1,100여 점. 이 어마어마한 컬렉션을 부부는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에 장기 대여해, 누구나 볼 수 있게 열어두었습니다.

교육에도 진심이었어요. 도리스는 2000년 KIPP 재단 설립에 함께했고, 부부는 미국 최대 규모의 공립 차터스쿨 네트워크를 키우는 데 7천만 달러가 넘는 돈을 기부했습니다. 자선 활동을 돌아보며 그가 남긴 말은 짧지만 오래 남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더 할 수 있어요."

포브스가 기록한 도리스 피셔

포브스는 도리스 피셔를 '자수성가(Self-Made)' 여성 기업가로 분류합니다.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인 2026년 3월 기준, 그의 순자산은 약 16억 달러로 집계됐어요. 생전 그는 포브스의 39개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고,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과 미국 자수성가 여성 부자 명단에 반복해서 등장했습니다.

유복한 집안에서 시작했다는 배경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6만 3천 달러를 모아 청바지 가게를 열고, 30여 년간 매장을 직접 감각으로 채워 넣고, 그렇게 만든 부를 미술관과 학교로 돌려보낸 선택들은 온전히 그의 것이었어요.

엄마가 된 뒤, 세상은 더 넓어졌습니다

도리스 피셔의 이야기가 오래 남는 건 단순한 성공담이어서가 아닙니다. 그는 남편과 '동등한 파트너'로 사업을 일구면서, 동시에 세 아들을 키운 엄마였어요. 일과 육아가 서로의 반대편에 있는 게 아니라, 한 사람 안에서 나란히 굴러갈 수 있다는 걸 그의 삶이 보여줍니다.

딱 맞는 청바지 하나 없어서 답답했던 마음을 흘려보내지 않고 세상을 바꾼 사람. "우리는 언제나 더 할 수 있어요"라던 그의 말은, 지금 각자의 자리에서 아이를 키우며 자신의 세계도 넓혀가는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응원 같기도 합니다.

참고 자료: 위키피디아 'Doris F. Fisher' · 포브스 프로필 'Doris Fisher' · NBC News 부고 · The San Francisco Standard · SFMOMA 피셔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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