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낭 하나로 미국에 온 이민자, 우주선 회사 오너가 된 두 아이 엄마 에렌 오즈만
스물두 살, 손에 쥔 건 배낭 하나와 서툰 영어뿐이었어요. 낯선 나라에서 밤에는 사무실을 청소하고 낮에는 회계 책을 붙잡았던 한 유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40여 년 뒤, 그는 미국 항공우주·방위 기업을 소유한 회장이자, 국제우주정거장으로 우주선을 띄우는 회사의 주인이 됩니다.
바로 에렌 오즈만(Eren Ozmen)이에요. 시에라 네바다 코퍼레이션(Sierra Nevada Corporation, SNC)의 회장이자 최대주주, 그리고 두 아이를 키운 엄마입니다. 오늘은 터키에서 온 이민자가 어떻게 우주선을 만드는 기업의 오너가 되었는지, 그 길 위에서 엄마로 산다는 건 어떤 모습이었는지 함께 들여다볼게요.

배낭 하나 메고 태평양을 건넜어요
에렌 오즈만은 1958년 무렵 터키 이즈미르에서 태어났어요. 스물두 살이던 1981년, 그는 영어 연수 프로그램을 위해 혼자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가진 돈도, 든든한 배경도 없이 배낭 하나만 메고 온 유학이었어요.
영어가 서툴렀기에 모든 게 두 배로 힘들었습니다. 그는 네바다 대학교 리노 캠퍼스에서 회계 석사(MBA) 과정을 밟으며 학비와 생활비를 스스로 벌었어요. 밤에는 사무실을 청소했고, 첫해에는 동네 빵집에 팔 바클라바(터키 전통 디저트)를 만들며 버텼습니다. 훗날 그는 이 시절을 두고 이렇게 회상했어요.
“영어를 못했고, 또다시 밑바닥부터 일하며 MBA를 마쳐야 했어요. 그때가 가장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흥미로운 건, 그가 학생 시절 잠시 청소 아르바이트를 했던 그 회사가 바로 훗날 그가 오너가 될 시에라 네바다 코퍼레이션이었다는 사실이에요. 1985년 MBA를 마친 그는 1988년, 이번엔 재무 컨설턴트로 SNC에 정식으로 합류합니다.
회계 장부에서 회사를 살릴 열쇠를 찾았어요
재무 담당으로 들어온 에렌은 곧 결정적인 문제를 발견했어요. SNC가 계약마다 비용을 잘못 계산해 매번 손해를 보고 있었다는 사실이었죠. 그가 이 구조를 바로잡지 않았다면 회사는 무너졌을지도 모릅니다. 숫자를 읽는 눈, 그것이 밑바닥에서 시작한 그의 진짜 무기였어요.
그리고 1994년, 에렌은 남편 파티흐 오즈만(Fatih Ozmen)과 함께 인생을 건 결정을 내립니다. 직원이 겨우 스무 명뿐이던 SNC를 아예 인수하기로 한 거예요. 두 사람은 살고 있던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경영권을 사들였습니다. 터키에서 온 이민자 부부가 자기 집을 걸고 우주 산업에 뛰어든 순간이었죠.
결과는 놀라웠어요. 오즈만 부부의 손에서 SNC는 19개 기업을 인수하며 미국 19개 주와 영국, 독일, 터키에 걸쳐 34개 거점을 둔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스무 명이던 직원은 3,000명이 넘는 규모로 불어났어요.
우주선 '드림 체이서'를 만드는 여자
SNC의 대표작은 활주로에 착륙하는 소형 우주 왕복선, 드림 체이서(Dream Chaser)예요. 이름 그대로 '꿈을 좇는 자'라는 뜻이죠. 마치 비행기처럼 활주로에 사뿐히 내려앉도록 설계된 이 우주선은 2016년 NASA로부터 국제우주정거장(ISS) 화물 보급 임무를 맡을 파트너로 선정됐어요.

2021년 SNC는 우주 사업 부문을 시에라 스페이스(Sierra Space)로 분사했고, 이 회사는 2026년 기준 80억 달러 규모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드림 체이서 발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2024년 4월, SNC는 유사시 핵 대응을 지휘하는 차세대 지휘기 E-4를 개발하는 131억 달러 규모의 미 공군 계약까지 따냈어요. 터키에서 배낭 하나 메고 온 유학생이, 미국 국가 안보의 핵심을 맡는 기업의 주인이 된 거예요.
두 아이를 키우며, 회사도 키웠어요
이 모든 성장의 한가운데서 에렌은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도 했어요. 무너져가던 회사를 살리려 밤낮으로 뛰던 그 시기, 부부는 어린 두 자녀도 함께 키우고 있었습니다. 일과 육아 사이에서 저글링하던 그 마음, 많은 엄마들이 공감할 거예요.
그래서였을까요. 그는 회사를 인수하기도 전인 1991년, 직원들을 위한 사내 어린이집을 만들었어요. 일하는 부모가 아이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는 환경, 그건 그가 몸소 겪어 알고 있던 절실함이었죠.
에렌이 가장 자주 이야기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어머니예요. 전업으로 일하면서도 세 딸을 키워낸 어머니를 그는 이렇게 기억합니다.
“어릴 적 어머니는 우리 자매가 공부에 집중하도록 늘 챙기셨어요. 다림질한 깨끗한 옷을 입혀 학교에 보냈고, 집에 오면 온 가족이 둘러앉는 저녁상이 차려져 있었죠. 부엌도 변변한 살림도 없었고 어머니는 온종일 일하셨는데도요. 대체 그걸 어떻게 다 하셨는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어머니는 매일 제게 보여주셨습니다. 안에 강한 정신만 있다면 넘지 못할 벽은 없다는 걸요.”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그 '강한 정신'을 에렌은 이렇게 정리해요. “회복력(resilience)은 하위 1%에서 상위 1%로 데려다줄 수 있어요. 그건 운이 아닙니다.”
포브스가 8년째 주목한 자수성가 여성
에렌 오즈만은 포브스가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자수성가 여성 명단에 이름이 오른 인물이에요. 리스트가 처음 만들어진 이래 8년 연속으로 이름을 올렸고, 최근에는 상위 10위 안에 드는 8위에 자리했습니다. 포브스가 처음 만든 '50 Over 50(50세 이상 성취 여성 50인)' 명단에도 선정됐어요.
2026년 7월 기준 포브스가 집계한 그의 순자산은 약 67억 달러에 이릅니다. 부의 원천은 뚜렷하게 '항공우주·방위(자수성가)'로 기록돼 있어요. 물려받은 재산이 아니라, 배낭 하나로 시작해 스스로 일군 결과라는 뜻이죠.
물론 그의 이야기를 그대로 따라 하기는 쉽지 않아요. 방위 산업은 거대한 정부 계약과 오랜 기술 축적 위에서 굴러가는, 아무나 뛰어들 수 없는 세계니까요. 다만 우리가 가져올 수 있는 건 규모가 아니라 태도예요. 밑바닥의 청소 일도, 육아의 고단함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기 자산으로 삼은 그 단단함이요. 그는 자신이 왜 멈추지 않는지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미국에서 여성이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 보세요. 세계 다른 곳과 비교하면요. 그래서 우리는 뒤에 남길 유산이 있다고 느낍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이 받은 것을 되돌려주는 일에도 진심이에요. 2014년 모교인 네바다 대학교 리노 캠퍼스에 500만 달러를 기부해 오즈만 창업 센터(Ozmen Center for Entrepreneurship)를 세웠고, 이 센터는 여성 창업가를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합니다. 2017년에는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오즈만 벤처스도 시작했어요.
배낭 하나에서 시작된 이야기
에렌 오즈만의 이야기는 화려한 성공담이 아니에요. 영어 한마디 서툴던 유학생이 청소를 하고 바클라바를 굽던 밤들, 집을 담보로 회사를 사들이던 아찔한 결정, 두 아이를 키우며 무너지는 회사를 붙잡던 시간들. 그 수많은 밑바닥의 순간들이 쌓여 우주선을 띄우는 오늘이 되었습니다.
엄마가 된다는 건 세상이 한 번 바뀌는 일이에요. 에렌에게도 회사와 아이를 동시에 키우던 그 시절은 분명 가장 흔들리던 때였을 거예요. 하지만 그는 그 시간을 공백이 아니라 자신을 더 단단하게 만든 과정으로 지나왔습니다. 오늘도 일과 육아 사이에서 저글링하는 당신 안에도, 넘지 못할 벽은 없다고 믿게 하는 그 강한 정신이 있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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