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방암 두 번 이겨낸 구글(알파벳) 사장, 세 아들 엄마 루스 포랏
진통이 시작된 병원 침대. 대부분은 세상 모든 걸 잠시 내려놓는 순간이죠. 그런데 이 여성은 그 순간에도 고객들에게 전화를 걸어 "괜찮으니 걱정 마시라"며 안심시켰다고 해요. 일에 미쳤다고 하기엔, 그 뒤에 걸어온 길이 너무 단단합니다.
월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불렸고, 지금은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을 이끄는 사장 겸 최고재무책임자(CFO). 세 아들의 엄마이자, 유방암을 두 번이나 이겨낸 생존자. 오늘 만나볼 <대단한 엄마들>의 주인공은 루스 포랏(Ruth Porat)입니다.

빈을 탈출한 아버지, 그리고 케임브리지의 소녀
루스 포랏은 1957년 영국에서 유대인 가정의 딸로 태어났어요. 이야기는 그녀보다 한 세대 앞, 아버지에게서 시작됩니다. 물리학자였던 아버지 댄 포랏은 나치의 '수정의 밤(크리스탈나흐트)' 이후 오스트리아 빈을 탈출한 사람이었습니다. 훗날 하버드대학교 물리학과 연구원 자리를 얻으면서, 당시 상원의원이던 존 F. 케네디가 그의 미국 비자를 보증해 주었다고 해요.
그렇게 가족은 영국에서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로 건너왔고, 루스는 이민자 학자 집안의 딸로 자랐습니다. 공짜로 주어진 것 하나 없이 실력으로 증명해야 했던 환경이었죠. 그녀는 스탠퍼드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영국 런던정경대(LSE)에서 석사를,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에서 MBA를 마쳤어요. 세 개 나라를 오간 공부의 여정이, 훗날 국경을 넘나드는 금융 거래를 이끄는 밑거름이 됩니다.
월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이 되기까지
1987년, 와튼을 갓 졸업한 포랏은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에 입사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무려 27년을 일했어요. 인수합병(M&A)과 금융기관 자문 분야에서 한 계단씩 올라, 2003년 투자은행 부문 부회장에 오릅니다.
그녀의 이름이 업계 밖으로 알려진 건 위기의 순간들이었어요. 2000년 닷컴 버블이 꺼질 무렵, 포랏은 자금난에 몰린 아마존의 유럽 채권 발행을 성사시켜 회사를 구해내는 데 힘을 보탰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미국 재무부를 도와, 무너져 가던 국책 모기지 기관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구조조정을 자문했죠. 남자들이 대부분이던 월가에서, 위기의 한복판마다 불려 나가는 사람. 언론이 그녀를 '월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이라 부른 이유입니다. 2010년 그녀는 모건스탠리의 CFO 자리에 오릅니다.

병원 침대에서도 전화를 놓지 않은 엄마
포랏은 1983년 변호사 앤서니 파두아노와 결혼해 세 아들을 키웠습니다. 남편은 뉴욕의 로펌에서 지식재산권을 다루는 파트너 변호사였고, 부부는 각자 치열한 커리어를 이어가며 세 아이를 함께 길러냈어요.
앞서 이야기한, 출산을 앞둔 병원에서까지 고객 전화를 받았다는 일화는 그녀의 책임감을 보여주는 동시에, 워킹맘이 짊어졌던 무게를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녀는 완벽한 균형을 자랑한 적이 없어요. 다만 일과 육아 어느 쪽도 놓지 않겠다는 선택을 매일 다시 했을 뿐이죠. 그리고 그 선택이 가장 시험받은 순간이, 곧 그녀를 찾아옵니다.
유방암을 두 번 이기고, 그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다
커리어가 한창 궤도에 오르던 무렵, 포랏은 유방암 진단을 받습니다. 그것도 두 차례였어요. 세 아이를 키우며 월가의 최전선에서 뛰던 여성에게 닥친, 상상하기 힘든 시간이었을 겁니다.
그녀가 특별했던 건, 그 경험을 숨기지 않았다는 데 있어요. 많은 이들이 조용히 넘기려 하는 이야기를 포랏은 공개적으로 나누며, 정기 검진과 조기 발견의 중요성을, 그리고 여성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널리 알렸습니다. 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그녀는 일을 놓지 않았는데,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어요.
“일하러 간다는 건, 내가 내 삶을 통제하고 있다는 뜻이었어요. 병이 나를 정의하도록 두지 않았죠. 그런 점에서 일은 제가 건강을 지키는 데 정말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일이 그저 성취의 무대가 아니라, 자신을 지탱하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 두려움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삶의 주도권을 자기 손에 쥐려 했던 그 마음은, 지금 어떤 자리에서든 하루를 버텨내는 우리 모두에게 조용한 위로를 건넵니다.
월가를 떠나 실리콘밸리로, 그리고 억만장자가 되기까지
2015년, 포랏은 모두를 놀라게 한 결정을 내립니다. 27년을 몸담은 금융을 떠나 구글과 알파벳의 CFO로 자리를 옮긴 거예요. 마침 지주회사 알파벳 체제로 재편되던 시점, 그녀는 자율주행·의료 같은 '문샷' 실험 사업들("아더 벳")의 지출에 규율을 세우며 회사의 재무 체력을 다졌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녀가 강조한 원칙은 분명했어요.
“위대함은 비용을 깎아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절약과 투자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낸 그녀의 리더십은 시장의 신뢰로 돌아왔습니다. 2023년에는 CFO를 넘어 알파벳과 구글의 사장 겸 최고투자책임자(President & CIO)로 승진했고요. 포브스는 2026년 기준 그녀의 순자산을 약 10억 달러로 추산하며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이민자' 중 한 명으로 꼽았고, 2025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목록에서 12위에 올렸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부를 일군, 이민자 학자 집안 딸의 도착지치고는 꽤 근사한 곳이네요.
일이 나를 지켜줄 때
루스 포랏의 이야기는 단순한 성공담이 아닙니다. 이민자 아버지가 물려준 성실함, 남성 중심의 월가에서 실력으로 증명해온 세월, 세 아이를 키우며 병까지 이겨낸 시간이 층층이 쌓여 지금의 그녀를 만들었죠.
무엇보다 그녀는 "일하러 가는 것이 나를 지켜주었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를 낳은 뒤 마주한 낯선 세상 앞에서, 내 일과 내 시간을 지키는 것이 곧 나를 지키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씩씩하게 하루를 살아내는 엄마들에게, 그녀의 삶은 그렇게 말을 건넵니다. 당신이 하는 그 일이, 지금의 당신을 지켜주고 있다고요.
참고 자료
· 위키피디아 — Ruth Porat
· Forbes — Ruth Porat Profile
· Jewish Women's Archive — Ruth Porat
· Fortune — Most Powerful Women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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