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정속옷 브랜드 스팽스 창업자, 세계 최연소 자수성가 여성 억만장자, 그리고 네 아이 엄마, 사라 블레이클리
옷장에 몇 달째 걸려만 있던 흰 바지, 다들 하나쯤 있으시죠? 마음에 쏙 드는데 딱 맞는 속옷이 없어서 결국 못 입고 마는 그 옷이요. 1998년 어느 날, 플로리다에 살던 스물일곱 살의 한 여성도 파티에 가려고 그 흰 바지를 꺼냈다가 똑같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조금 달랐어요. 서랍에서 발목까지 오는 보정 스타킹을 꺼내더니, 가위로 발 부분을 싹둑 잘라 신고 파티에 갔거든요.
그날 밤 거울 앞에서 그녀는 생각했습니다. "왜 이런 제품이 세상에 없지?" 이 작은 질문 하나가 세계 최연소 자수성가 여성 억만장자를 탄생시킨 보정속옷 브랜드 스팽스(Spanx)의 시작이었습니다. 오늘 소개할 대단한 엄마는 바로 그 주인공, 네 아이의 엄마 사라 블레이클리(Sara Blakely)입니다.

"이번 주엔 뭐 실패했어?" 실패를 응원한 아버지
사라는 1971년 미국 플로리다주 클리어워터에서 태어났습니다. 화가인 어머니와 변호사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는데요, 그녀의 인생을 관통하는 태도는 어린 시절 저녁 식탁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아버지는 매일 저녁, 자녀들에게 이렇게 물었대요. "오늘은 뭐 실패했니?"
실패한 이야기가 없으면 아버지는 오히려 실망했다고 합니다. 무언가에 도전했다가 넘어진 이야기를 꺼내면 하이파이브를 하며 "잘했어!"라고 외쳐 주었고요. 이 특별한 식탁 대화는 사라에게 실패의 정의를 완전히 바꿔 놓았습니다.
"저에게 실패란 결과가 아니에요. 도전하지 않는 것이 실패죠. 거울을 보며 '무서워서 시도조차 못 했어'라고 말해야 하는 순간, 그게 진짜 실패예요."
솔직히 짚고 넘어갈 부분도 있습니다. 실패를 게임처럼 응원해 줄 수 있었던 건,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지켜봐 주는 안정적인 가정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해요. 누구나 이런 환경에서 시작하지는 못하니까요. 다만 사라가 그 환경에서 물려받은 것이 재산이 아니라 '일단 해 보는 태도'였다는 점, 그리고 그 태도를 자기 힘으로 밀어붙였다는 점은 우리가 배울 만한 지점입니다.
로스쿨 낙방생에서 방문판매원으로, 그리고 5천 달러
사라의 커리어는 화려한 이력서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로스쿨 입학시험(LSAT)에서 두 번이나 낮은 점수를 받고 변호사의 꿈을 접었고요, 디즈니월드에서 잠깐 일하다가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에도 섰다가, 결국 사무기기 회사에 들어가 팩스기를 집집마다 파는 방문판매원이 되었습니다. 문전박대를 밥 먹듯 당하면서도 스물다섯 살에 전국 영업 트레이너 자리까지 올랐죠.
보정 스타킹의 발을 잘라 낸 그날 이후, 사라는 이 아이디어에 인생을 걸기로 합니다. 스물일곱 살에 애틀랜타로 옮겨, 낮에는 팩스기를 팔고 밤에는 제품을 연구했어요. 밑천은 그동안 모은 5,000달러가 전부였습니다.
- 노스캐롤라이나의 양말 공장들은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라며 줄줄이 거절했습니다. 결국 한 공장 사장이 세 딸의 설득에 못 이겨 시제품을 만들어 주었어요.
- 변호사를 살 돈이 없어 특허법 책을 직접 사서 읽고, 특허 출원 마무리에 750달러만 썼습니다.
- '스팽스'라는 상표권은 신용카드로 150달러를 긁어 사들였고요.
가장 유명한 일화는 백화점 니만 마커스에서의 담판입니다. 바이어 앞에서 말로만 설명하다 안 되겠다 싶었던 사라는 바이어를 화장실로 데려가 직접 제품을 입고 나온 전후 모습을 보여 줬어요. 그 자리에서 7개 매장 입점이 결정됐습니다. 광고비 한 푼 없이 오프라 윈프리에게 제품 바구니를 보낸 것도 통했습니다. 2000년 오프라가 스팽스를 '내가 사랑하는 것들'로 꼽자, 사라는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냈어요. 첫해 매출 400만 달러, 이듬해 1,000만 달러. 스팽스는 그렇게 날아올랐습니다.

포브스 표지를 장식한 최연소 자수성가 억만장자
2012년, 사라 블레이클리는 세계 최연소 자수성가 여성 억만장자로 포브스(Forbes) 잡지 표지를 장식했습니다. 외부 투자도, 은행 대출도, 광고비도 없이 회사 지분을 100% 혼자 소유한 채 이룬 성과라 더 특별했죠. 포브스가 자수성가 정도를 매기는 점수에서 그녀는 상위권인 8점을 받았습니다.
2021년 말에는 글로벌 투자사 블랙스톤이 스팽스의 지분 다수를 인수하며 회사 가치를 12억 달러로 평가했습니다. 2026년 현재 포브스가 추정하는 그녀의 순자산은 약 14억 달러.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크게 울린 건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매각 소식을 알리던 날, 사라는 전 직원 약 750명에게 각각 현금 1만 달러와 원하는 곳 어디든 갈 수 있는 퍼스트클래스 왕복 항공권 2장을 선물했거든요. 함께 여기까지 온 사람들에게 성공을 나누는 방식이었습니다.
2013년에는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이 시작한 기부 서약 '기빙 플레지'에 여성 최초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재산의 절반 이상을 여성 교육과 창업을 돕는 데 쓰겠다는 약속이었죠.
"저는 늘 스스로에게 물어요. 왜 안 되는데?(Why not?)"
네 아이의 엄마로, 그리고 여전히 창업가로
사라는 2008년 마르퀴스 제트의 공동창업자인 제시 이츨러와 결혼해 네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2009년 첫아들 레이저를 낳았고, 2014년에는 쌍둥이 아들 찰리와 링컨을, 2016년에는 딸 테퍼를 품에 안았어요. 회사를 키우는 일과 네 아이를 키우는 일을 동시에 해낸 셈입니다.
주목할 점은, 세상을 놀라게 한 12억 달러 매각과 직원들에게 선물을 안긴 그 순간의 사라가 네 아이를 키우는 엄마였다는 사실입니다. 엄마가 된다는 것이 커리어의 공백이나 단절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을 품고 성공을 나눌 줄 아는 리더로 성장하는 과정일 수 있다는 걸 그녀는 보여 줬어요. 그리고 억만장자가 된 뒤에도 멈추지 않고 2024년에는 하이힐과 운동화를 결합한 새 브랜드 '스니엑스(Sneex)'를 선보이며 또 한 번 "왜 안 되는데?"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거울 앞에서 도망치지 않는 하루
사라 블레이클리의 이야기는 대단한 발명이나 엄청난 밑천에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남들이 그냥 지나친 불편함 앞에서 "왜 이건 안 될까?"라고 한 번 더 물어본 것, 그리고 무서워서 도망치는 대신 일단 해 본 것. 그게 전부였어요.
육아를 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나' 스스로에게 묻게 되지요. 그럴 때 사라 아버지의 질문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오늘 내가 무언가에 도전했다면, 설령 넘어졌더라도 그건 실패가 아니라 멋진 하루입니다. 아이를 키우며 '나'라는 사람도 함께 키워 가는 모든 엄마들의 도전을, 육아크루가 응원합니다.
참고 자료
· Forbes, Sara Blakely 프로필(순자산·순위·자수성가 점수)
· Wikipedia, Sara Blakely(생애·커리어·가족)
· CNBC, "성공의 비결은 실패" 아버지의 식탁 질문 인터뷰
· Stanford GSB, "Share Your Failures"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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