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아이의 과학자 엄마, 바이오라드 공동창업자 앨리스 슈워츠
결혼과 출산을 지나며 "이제 내 커리어는 여기까지인가" 하고 마음이 철렁했던 순간, 한 번쯤 겪어보셨을 거예요. 아이를 키우면서 동시에 무언가를 새로 시작한다는 건 상상만 해도 벅찬 일이니까요.
그런데 여기, 스물여섯 무렵의 한 여성이 있었어요. 남편과 함께 모은 전 재산 720달러를 들고, 버클리의 허름한 반원형 막사(Quonset hut)에서 회사를 차린 사람. 그렇게 시작한 작은 실험실은 70여 년 뒤 전 세계 병원과 연구실에서 쓰이는 글로벌 바이오 기업이 되었고, 그녀는 미국에서 가장 나이 많은 자수성가 여성 억만장자로 기록되었어요. 바이오라드(Bio-Rad Laboratories)의 공동창업자, 앨리스 슈워츠(Alice Schwartz)의 이야기예요.

버클리의 생화학도, 실험실에서 인생의 동료를 만나다
앨리스 슈워츠는 1925년 무렵 태어나,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UC Berkeley)에서 생화학(biochemistry)을 공부했어요. 여성 과학도가 흔치 않던 시절, 그녀는 시험관과 화학식이 가득한 실험실을 자기 자리로 삼았죠.
그리고 그 버클리에서 평생의 동료이자 남편이 될 데이비드 슈워츠(David Schwartz)를 만나요. 두 사람은 과학에 대한 열정을 공유했고, 곧 결혼했어요. 학문적 파트너이자 인생의 파트너, 그리고 얼마 뒤에는 사업의 공동창업자가 된 거예요.
720달러로 시작한 '작은 실험실', 바이오라드
1952년, 부부는 버클리에서 바이오라드를 세웠어요. 손에 쥔 자본은 단돈 720달러. 거창한 투자도, 든든한 배경도 없었죠. 초기 바이오라드는 제약 생산과 연구실에서 쓰이는 이온 교환 수지(ion exchange resin) 같은 특수 소재를 만드는 데서 출발했어요.
이 시절 앨리스는 회사의 과학적 심장이었어요. 훗날 언론이 그녀를 "바이오라드 초창기의 화학 전문가(chemistry maven)"라고 부른 이유죠. 남편 데이비드는 아내를 이렇게 표현했어요.
“아주 박식하고, 숫자에 아주 밝고, 정말이지 명석한 사람이었어요.”
과학 지식과 숫자 감각을 겸비했던 앨리스는 연구는 물론, 시간이 흐르며 회사의 재무까지 챙겼어요. 한 사람이 실험대와 장부를 모두 책임진 셈이에요.
갑상선 진단 키트, 회사의 운명을 바꾸다
바이오라드의 진짜 도약은 1960년대에 찾아왔어요. 앨리스는 회사의 첫 갑상선 기능 진단 키트 개발에 핵심 역할을 했어요. 연구용으로 다져온 분리 기술과 소재를 임상 진단에 응용한 거죠.
이 한 걸음이 바이오라드를 단순한 연구용 소재 회사에서 임상 진단(clinical diagnostics) 분야로 확장시켰어요. 오늘날 바이오라드가 전 세계 병원과 검사실에서 쓰이는 진단 장비와 시약을 만드는 회사로 성장한 출발점이 바로 여기예요.
- 1966년 기업 공개(IPO)로 상장
- 1980년 아메리칸 증권거래소(AMEX) 상장
- 2008년 뉴욕 증권거래소(NYSE)로 이전
- 현재 1만여 개 제품, 연 매출 약 26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

두 아이를 키우며 회사를 키운 70년
앨리스는 회사를 키우는 동안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했어요. 실험실과 사업, 그리고 가정을 동시에 짊어진 삶이었죠. 화려하게 드러나는 자리보다 묵묵히 일하는 쪽을 택했던 그녀는 언론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고, 스포트라이트에서 한 발 물러서 있곤 했어요.
대신 그녀가 남긴 건 가업이었어요. 2012년 남편 데이비드가 세상을 떠난 뒤, 회사의 회장 겸 CEO 자리는 아들 노먼 슈워츠(Norman Schwartz)가 이어받았어요. 부부가 720달러로 시작한 실험실이, 이제 그 아들의 손을 거쳐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있는 거예요. 엄마가 키운 것은 회사이자, 곧 가족의 유산이었던 셈이죠.
앨리스는 2022년까지 바이오라드 이사회 멤버로 활동했고, 이후에는 명예이사(Director Emeritus)로 남았어요. 창업부터 70년, 한 회사와 평생을 함께한 셈이에요.
90대에도 미국에서 가장 나이 많은 자수성가 여성 부자
포브스(Forbes)는 앨리스 슈워츠를 '미국의 자수성가 여성 부자(America's Richest Self-Made Women)' 명단에 무려 21차례나 올렸어요. 순자산은 시기에 따라 2019년 약 13억 달러(20위)에서 2022년 약 24억 달러까지 오르내렸고, 2025년 기준으로도 약 17억 달러로 평가됐어요. 포브스가 매긴 자수성가 점수(Self-Made Score)는 10점 만점에 8점.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군 부라는 뜻이에요.
특히 그녀는 이 명단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자수성가 여성 억만장자로 자주 소개됐어요. 90대에 접어들어서도 자신이 세운 회사의 최대 주주이자 이사로 이름을 올린, 흔치 않은 이력이었죠.
물론 그녀의 이야기에도 남편이라는 든든한 동업자, 명문 버클리라는 배움의 토대가 있었어요. 하지만 720달러라는 출발선, 여성 과학자가 드물던 시대에 실험실과 장부와 육아를 함께 감당해 낸 태도만큼은, 배경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에요.
한 세기를 살아낸 과학자 엄마가 남긴 것
앨리스 슈워츠는 2025년 9월 25일, 99세로 세상을 떠났어요. 한 세기에 가까운 삶 동안, 그녀는 과학자이자 창업가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았어요.
결혼과 출산이 커리어의 마침표처럼 느껴질 때, 앨리스의 이야기는 조용히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아요. 시작은 작아도, 실험대와 장부와 아이를 한꺼번에 끌어안은 하루하루가 쌓이면 한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무언가가 된다고요.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해내고 있는 엄마들에게, 그녀의 70년이 조용한 응원이 되기를 바라요.
참고 자료
· Forbes, Alice Schwartz Profile (America's Richest Self-Made Women)
· Wikipedia, Alice Schwartz
· Bio-Rad Laboratories, "Co-Founder and Director Emeritus Alice Schwartz Passes Away"
· Money.com, "This 92-Year-Old 'Chemistry Maven' Is America's Oldest Self-Made Female Billiona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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