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조원을 굴리는 월가 퀀트 헤지펀드 D.E. Shaw를 이끄는 수학자 엄마 앤 디닝
대학 강의실, 컴퓨터라는 단어조차 낯설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주변 친구들 중 누구도 그 기계에 관심이 없었고, 강의실을 둘러봐도 여학생은 나 하나뿐인 날이 많았습니다. 그 낯설고 외로운 자리에 앉아 있던 한 사람이, 훗날 약 650억 달러(약 90조 원)를 굴리는 세계 최고 퀀트 헤지펀드의 정상에 오르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거예요.
월가에서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강력한 여성으로 꼽히는 사람, 바로 앤 디닝(Anne Dinning)입니다. 수학과 컴퓨터를 파고들던 박사 출신 연구원이 어떻게 세계적인 투자회사 D.E. Shaw의 집행위원장이 되었을까요? 그리고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그는 여름마다 어떤 선택을 반복했을까요? 화려한 인터뷰 한 장 남기지 않는 이 은둔형 억만장자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따라가 봅니다.

시애틀의 수학 소녀, 컴퓨터를 만나다
앤 디닝은 미국 서부 시애틀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로버트 디닝(Robert E. Dinning) 역시 워싱턴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를 졸업한 분이었고, 앤도 같은 대학에 진학해 1984년 학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가 처음부터 금융을 꿈꾼 것은 아니었어요. 그를 사로잡은 건 숫자와 논리, 그리고 하나의 질문이었습니다.
"현실의 문제를 실제로 풀어내는 일을 하고 싶다." 훗날 그는 컴퓨터과학에 빠져든 이유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대학에서 처음 신청한 컴퓨터과학 수업이 그의 인생 방향을 바꿔놓았고, 그는 곧 뉴욕대학교(NYU)의 명문 쿠란트 수리과학연구소(Courant Institute)로 향해 컴퓨터과학 박사 학위를 받습니다.
하지만 그 길은 결코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공부하던 시절, 컴퓨터과학은 압도적으로 남성의 세계였으니까요. 그는 당시를 이렇게 담담히 떠올립니다.
"컴퓨터과학은 이미 남성이 지배하는 분야였어요. 학부와 박사 과정 내내, 제 수업에 여학생은 저 말고 한 명 더 있을까 말까 했죠. 저는 아주 남성적인 환경에서 공부하고 일하는 법을 스스로 익혀야 했습니다."
월가의 낡은 로프트에서 시작된 커리어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앤 디닝 앞에는 여러 대학의 교수직 제안이 놓여 있었습니다. 안정된 학자의 길을 걸을 수도 있었죠. 그런데 그는 1990년, 거의 즉흥적인 결정으로 전혀 다른 길을 택합니다. 물리학자이자 컴퓨터과학자였던 데이비드 쇼(David Shaw)가 막 세운 작은 회사, D.E. Shaw & Co.에 합류한 거예요.
당시 회사는 직원이 스무 명 남짓, 천장 마감도 안 된 채 파이프가 그대로 드러난 낡은 로프트에서 굴러가던 신생 기업이었습니다. 앤은 그곳에서 일본 주식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알고리즘을 짜는 주니어 연구원으로 시작했습니다. 수학과 컴퓨터로 시장을 해석한다는, 당시로선 낯설고 실험적인 발상이었죠.
그러나 앤은 빠르게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입사 5년 만인 1995년에는 회사의 자산운용 사업 상당 부분을 총괄하는 자리에 올랐어요. 오늘날 흔히 말하는 '퀀트(quant) 투자', 즉 수학·통계·전산 모델로 시장을 읽는 방식의 최전선에 그가 있었습니다.

떠났다가 돌아오다, 그리고 정상에 서다
흥미롭게도 앤 디닝은 1999년 한 차례 회사를 떠나 고향 시애틀로 돌아갑니다. 커리어의 정점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 선택이었어요. 하지만 3년 뒤인 2002년, 창업자 데이비드 쇼가 펀드의 일상 경영을 5인 집행위원회에 넘기면서 그는 다시 부름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회사를 이끄는 핵심 자리로 돌아왔죠.
오늘날 앤 디닝은 D.E. Shaw의 매니징 디렉터이자 집행위원회 의장으로, 약 650억 달러 규모의 자산을 굴리는 이 거대 퀀트 헤지펀드의 전 세계 사업을 함께 총괄합니다. 그의 실력은 업계의 인정으로 이어졌어요. 2006년에는 '100 Women in Hedge Funds'가 주는 산업 리더십상을 받았고, 2007년에는 미국 대통령 금융시장 실무그룹 산하 자산운용사 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기도 했습니다.
그의 성취는 숫자로도 또렷합니다. 포브스(Forbes)는 앤 디닝을 미국 자수성가 여성 부자의 한 명으로 꼽아왔어요. 2017년 순자산 6억 달러로 처음 명단에 이름을 올린 그는 2022년 9억 달러를 거쳐, 2026년 현재 포브스 실시간 집계 기준 약 12억 달러(약 1조 6천억 원)의 순자산을 보유한 억만장자로 기록됩니다. 상속이 아니라, 낡은 로프트의 주니어 연구원에서 스스로 쌓아 올린 부입니다.
물론 솔직하게 짚을 부분도 있습니다. 퀀트 헤지펀드의 세계는 최고 수준의 교육과 수학적 재능이라는 문턱이 있는, 아무나 발을 들일 수 없는 영역이에요. 앤 역시 명문대 박사라는 배경 위에서 출발했습니다. 다만 그가 마주한 진짜 장벽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여성은 거의 없는 세계'에서 홀로 버티고 증명해야 했다는 것. 그가 후배 여성들에게 건네는 조언에는 그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제 가장 큰 조언은, 결코 늦지 않았다는 거예요. 지금 관심이 생겼다면, 바로 지금이 완벽한 때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생각하는 '프로그래머다운 모습'과 달라도 괜찮아요."
엄마가 된 뒤, 여름마다 시애틀로 향하는 마음
화려한 커리어 뒤편에서, 앤 디닝은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합니다. 그는 오랜 파트너 마이클 울프(Michael Wolf)와 함께 두 자녀를 키웠어요. 첫째 샘 울프(Sam Wolf)는 윌리엄스 칼리지를 졸업한 뒤 의회 보좌관으로 일하며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청년으로 자랐습니다. 세상에 자기 이야기를 거의 드러내지 않는 앤이지만, 아이들을 키운 시간만큼은 삶의 또렷한 중심이었습니다.
월가의 정점에 있으면서도 그는 뿌리를 잊지 않았어요. 앤과 마이클은 고향 워싱턴대학교 근처에 오랫동안 여름 별장을 두고, 여름이면 아이들과 함께 시애틀로 돌아가는 삶을 이어왔습니다. 뉴욕의 치열한 금융 세계와, 아이들과 함께하는 서부의 느린 여름 사이를 오가며 균형을 지어온 셈이죠. 커리어의 절정에서 잠시 고향으로 돌아갔던 1999년의 선택도, 이런 그의 삶의 결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가 부를 다루는 방식에서도 그 마음이 읽힙니다. 앤 디닝은 자신의 재단을 통해 3억 달러가 넘는 돈을 기부해왔어요. 빈곤 퇴치에 힘쓰는 로빈후드 재단(Robin Hood Foundation), 세계 의료 격차를 줄이는 파트너스 인 헬스(Partners in Health)의 이사로 활동하고, 다음 세대를 위한 STEM 교육에도 깊이 관여합니다. 특히 자신이 걸었던 길을 넓히듯, 고향 워싱턴대학교 컴퓨터과학·공학부에 '앤 디닝-마이클 울프 기금'을 세워 후배 연구자들을 지원하고 있어요.
앤 디닝이 마음을 쏟는 곳
- 로빈후드 재단 · 뉴욕의 빈곤 문제에 맞서는 단체, 이사로 활동
- 파트너스 인 헬스 · 저개발 지역 의료 지원, 이사이자 후원자
- Math for America · Code.org · 수학·컴퓨터 교육을 통한 다음 세대 지원
- 워싱턴대학교 컴퓨터과학·공학부 · 후배 연구자를 위한 기금 조성
늦은 때란 없다, 지금 시작하는 모든 엄마에게
앤 디닝의 이야기가 특별한 건, 단지 그가 억만장자여서가 아닙니다. 아무도 자신을 닮지 않은 강의실에서 홀로 버티며 "이 모습이 프로그래머다운 모습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온 태도, 정점에서도 아이들과의 여름을 놓지 않으려 했던 균형 감각 때문이에요.
엄마가 된다는 건 세상과 다시 마주 서는 일입니다. 낯선 자리에서 처음 무언가를 시작해야 할 때, 앤의 문장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지금 관심이 생겼다면, 바로 지금이 완벽한 때라는 그 말을요. 늦은 때란 없고, 당신이 그리는 당신의 모습은 그 누구의 틀과도 같을 필요가 없으니까요.
참고 자료
· Forbes, Anne Dinning 프로필
· The D. E. Shaw Group, Who We Are (Leadership)
· Code.org, "5 questions with D. E. Shaw Group's Anne Dinning"
· Inside Philanthropy, "How Wall Street Winner Anne Dinning Backs Anti-Poverty Work"
· MIT EECS, Anne Dinning 자문위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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