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주택 바닥에서 J.B. 헌트 물류 제국까지, 두 아이 엄마 조넬 헌트
미국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하얀 트레일러 옆면에 붉은 글씨로 J.B. HUNT이라고 적힌 트럭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어요. 미국 최대 규모의 트럭 물류 기업 가운데 하나죠. 그런데 이 거대한 회사가, 아칸소 시골의 이동주택 바닥에 앉아 장부를 쓰던 두 아이 엄마의 손끝에서 함께 자라났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오늘 소개할 주인공은 조넬 헌트(Johnelle Hunt)입니다. 남편 J.B. 헌트와 함께 쌀겨를 팔던 작은 사업에서 시작해, 미국을 가로지르는 물류 제국을 일군 공동창업자예요. 포브스가 선정한 미국 자수성가 여성 기업가이자, 여전히 아이들과 손주들을 챙기는 할머니이기도 하고요.

헤버 스프링스의 소녀, 빨간 포드 트럭을 만나다
조넬 헌트는 1932년 아칸소주 헤버 스프링스에서 조넬 테리아 드버스크(Johnelle Terria DeBusk)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어요. 가금류(닭) 사업을 하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는 어릴 때부터 큰 차를 다뤘고, 고등학교 시절 이미 대형 트럭을 몰아봤다고 해요. 훗날 트럭 물류업에서 몇 안 되는 여성이 되었을 때에도 그가 주눅 들지 않았던 배경이죠.
중앙아칸소대학교에서 교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던 그는, 열여섯 살 때 스물한 살의 청년 조니 브라이언 헌트(J.B. Hunt)를 만납니다. 옆면에 자기 이름을 적은 빨간 포드 트럭을 몰고 다니던 청년이었어요. 두 사람은 1952년 결혼했는데, J.B.가 프러포즈에 쓴 반지는 고모에게 80달러를 빌려 마련한 것이었다고 해요. 넉넉함과는 거리가 먼, 그야말로 맨손의 출발이었죠.
이동주택 바닥에서 시작한 부부의 사업
1961년, 부부는 살던 집을 팔고 대출을 받아 아칸소주 스터트가트에서 J.B. 헌트 컴퍼니를 세웁니다. 첫 사업 아이템은 트럭이 아니라 쌀겨(rice hulls)였어요. 가금류 농장의 깔짚으로 쓰이는 쌀겨를 사고팔고 실어 나르는 일이었죠.
이 작은 회사에서 조넬은 자연스럽게 사실상의 경영·사무 총괄을 맡게 됩니다. 처음엔 남편을 돕는 파트타임이었지만, 회사가 커지면서 편지 응대와 재무제표 작성, 장부 정리까지 도맡으며 어느새 풀타임으로 일하게 됐어요. 스터트가트의 이동주택에서 살던 시절, 그는 바닥에 앉아 주문 전화를 받았다고 회고합니다.
1969년, J.B.는 사업의 무게 중심을 트럭 운송으로 옮겨 J.B. 헌트 트랜스포트 서비스를 시작해요. 시작은 중고 트럭 다섯 대와 트레일러 일곱 대였습니다. 회사가 커지면서 본사는 아칸소주 로웰로 옮겨 갔고요.

밤 10시에도 전화를 걸던 '수금하는 사람'
초창기 회사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데에는 조넬의 몫이 컸어요. 특히 그가 오랫동안 맡았던 일은 외상값 수금이었습니다. 직원들 월급날을 맞추려면 받을 돈을 반드시 받아내야 했으니까요.
“오랫동안 제가 수금을 다 했어요. 밤 10시에 그 사람 집으로 전화하거나 새벽 5시에 전화하지 않으면 월급을 못 준다는 걸 알았거든요.”
돈을 안 갚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그리 친절한 사람은 아니었다"고 그는 솔직하게 인정해요. 하지만 그것이 회사의 생존이 걸린 일이었죠. 여성이 거의 없던 트럭 업계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단 한 번도 남자에게 기가 눌린다고 느낀 적이 없어요.”
백미러를 보는 사람
조넬은 남편의 크고 대담한 아이디어에 대해 늘 신중한 '브레이크' 역할을 했다고 해요. 재미있게도, 그의 회의적인 태도가 오히려 남편의 승부욕에 불을 지폈다고 하죠. 두 사람의 역할을 그는 이렇게 표현했어요.
“조니는 앞유리(windshield)를 내다봤고, 저는 늘 백미러(rearview)를 봤어요.”
앞만 보고 질주하는 남편 곁에서, 조넬은 이미 지나온 자리와 놓친 것은 없는지를 살피는 사람이었던 거예요. 두 사람은 회사를 함께 키우는 내내 두 아이를 키우고 일곱 명의 손주를 맞이한 부모이자 조부모이기도 했습니다. J.B.가 2006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둘의 결혼 생활은 55년 가까이 이어졌어요.
물류 대기업을 함께 이끌면서 가정을 지켜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균형이 아니었을 거예요. 조넬은 그 두 세계를 오가며, 회사에서는 신용관리 책임자와 이사회 법인비서(corporate secretary)로 2008년 은퇴할 때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자수성가 여성 기업가,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온 부
부부가 1983년 회사를 상장시킨 J.B. 헌트 트랜스포트는 오늘날 연 매출 약 121억 달러 규모의 미국 대표 물류 기업으로 성장했어요. 조넬은 은퇴 후에도 이 회사의 최대 개인 주주(약 19% 지분)로 남아 있습니다.
이 지분과 사업의 성공은 그를 억만장자의 자리에 올려놓았어요. 포브스에 따르면 2026년 7월 기준 그의 순자산은 약 69억 달러로, 미국 자수성가 여성 부자 명단(Richest Self-Made Women)에 이름을 올린 인물이에요. 물론 오늘날의 어마어마한 부는 이동주택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는 특권이지만, 그 출발점이 시골 가금류 집안의 딸이었다는 사실은 여전히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주목할 점은 그가 이 부를 고향 아칸소로 돌려보내고 있다는 거예요. 남편이 떠난 뒤 조넬은 헌트 벤처스를 이끌며 로저스의 피너클 힐스 개발 등 지역 사업을 챙겼고, 대학과 의료·연구 분야에 폭넓게 기부해 왔어요. 신생아·산전 돌봄을 돕는 재단, 유방암 인식 캠페인, 안과 연구소 등에 힘을 보탰고, 아칸소대학교 모금 캠페인에서는 재무를 맡아 10억 달러가 넘는 기금을 모으는 데 기여했죠. 2024년에는 아칸소대학교에 1억 달러를 기부한다고 발표하기도 했어요. 2015년에는 아칸소 여성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고요.
백미러 속에도 길이 있어요
조넬 헌트의 이야기는 화려한 성공담이라기보다, 매일의 몫을 묵묵히 해낸 사람의 기록에 가까워요. 남편이 앞유리를 보며 꿈을 키우는 동안, 그는 백미러로 현실을 챙기고 장부를 맞추고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어느 한쪽이 없었다면 그 트럭들은 지금처럼 달리지 못했을 거예요.
일과 육아를 함께 짊어진 채 이동주택 바닥에서 전화를 받던 그 시간이, 사실은 무언가를 잃어버린 공백이 아니라 제국의 토대를 쌓던 시간이었다는 것. 지금 각자의 자리에서 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조넬의 백미러는 조용히 말을 건네는 것 같아요. 지나온 길과 지금 하는 이 일 안에, 이미 길이 나 있다고요.
참고 자료
· 위키피디아, Johnelle Hunt
· Forbes, Johnelle Hunt Profile
· J.B. Hunt, Johnelle Hunt: One of the Original Women of Trucking
· Arkansas Women's Hall of Fame, Johnelle Hunt
· Talk Business & Politics, Johnelle Hunt tells life story to trucking execut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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