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딸을 살리려 제약회사를 세운 엄마, 시리우스 창업가 마틴 로스블랫
내 아이가 낫지 않는 병이라는 진단을 받는다면, 우리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부모는 최고의 병원을 찾고, 논문을 뒤지고, 밤새 검색창을 붙잡습니다. 그런데 여기, 아예 제약회사를 직접 세워서 치료제를 만들어낸 엄마가 있습니다.
위성 라디오 시리우스(SiriusXM)를 만든 통신 사업가에서, 딸을 살리기 위해 바이오 제약회사 유나이티드 테라퓨틱스(United Therapeutics)를 창업한 마틴 로스블랫(Martine Rothblatt).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자수성가 여성으로 꼽히는 그의 이야기는, 사실 한 아이의 부모가 사랑으로 시작한 이야기입니다.

하늘을 보던 아이, 위성으로 세상을 연결하다
마틴 로스블랫은 1954년 시카고에서 태어나 샌디에이고 근교에서 자랐습니다. 다섯 살 무렵 아버지가 큰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지만, 메이오 클리닉의 실험적 척추 수술을 받고 회복하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봤어요. 어린 마틴에게 이 경험은 "기술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수 있다"는 깊은 낙관을 심어줬습니다.
음악과 천문학을 사랑하던 학생은 UCLA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고 1977년 최우등(summa cum laude)으로 졸업했습니다. 졸업 논문 주제는 다름 아닌 '직접 위성 방송'. 이후 법학 박사(J.D.)와 경영학 석사(MBA)를 함께 따내며, 위성이라는 한 우물을 파고들었죠.
그 집념은 현실이 됐습니다. 세계 최초의 민간 국제 위성 통신망 팬암샛(PanAmSat) 설립에 참여했고, 1990년에는 자동차에서 라디오를 끊김 없이 듣게 해준 시리우스 위성 라디오를 창업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여기는 '차 안의 위성 방송'을 열어젖힌 개척자였던 셈이에요.
일곱 살 딸의 진단서, 그리고 방향을 바꾼 삶
시리우스가 1993년 상장하며 승승장구하던 무렵, 로스블랫의 인생을 통째로 흔든 일이 찾아옵니다. 1994년, 어린 딸 제네시스(Jenesis)가 폐동맥고혈압(PAH) 진단을 받은 거예요. 폐로 가는 혈관의 압력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는 희귀 난치병으로, 당시 의사들은 앞으로 몇 년밖에 살지 못할 거라고 했습니다.
치료제는 없었고, 제약회사들은 환자 수가 적은 희귀병 치료제에 좀처럼 투자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부모라면 절망했을 자리에서, 로스블랫은 다른 선택을 합니다. 의학을 독학으로 파고들기 시작한 것이죠. 위성 통신 전문가였던 그는 의학 논문과 학회를 뒤지며 병의 원리를 공부했고, 잠들어 있던 한 후보 물질의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1996년, 딸과 같은 병을 앓는 이들을 위한 치료제를 만들겠다며 유나이티드 테라퓨틱스를 세웁니다. "안 된다"는 말 앞에서 멈추지 않는 그의 성격은, 뒷날 이렇게 요약됐어요.
"저는 왜 그게 안 되는지 이유를 듣는 걸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 '안 되는 이유'들을 하나씩 깎아냅니다."
결과는 기적에 가까웠습니다. 회사는 레모듈린, 타이바소, 오레니트램 등 FDA 승인 치료제들을 잇달아 내놓았고, 폐동맥고혈압은 '몇 년 시한부'에서 '관리 가능한 병'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렇게 딸 제네시스는 물론, 같은 병을 앓는 전 세계 수천 명의 생명이 함께 살아났어요.

있는 그대로의 나로, 담담하게
로스블랫은 1982년 결혼한 아내 비나(Bina)와 함께 네 아이를 키운 부모입니다. 그리고 1994년, 마흔의 나이에 자신이 트랜스젠더 여성임을 밝히고 이름을 마틴 알리아나 로스블랫으로 바꿨어요. 딸의 투병과 회사 창업이 맞물리던 바로 그 시기였습니다.
그는 이 사실을 흥밋거리로 삼지 않고, 담담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갔습니다. 가족은 변함없이 곁을 지켰고, 부부는 함께 아이들을 키우며 회사를 일궈갔어요. 정체성이 무엇이든, 아이를 살리려는 부모의 마음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는 사실. 그게 이 이야기의 진짜 중심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자수성가 여성 중 한 명
포브스는 로스블랫을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자수성가 여성(America's Richest Self-Made Women)' 명단에 이름을 올린 인물로 소개합니다. 2026년 7월 기준 그의 순자산은 약 18억 달러로 추정되며, 재산의 원천은 그가 맨손으로 일군 제약 사업입니다.
그는 한때 미국에서 가장 높은 보수를 받는 여성 CEO로도 꼽혔습니다. 위성 통신에서 바이오 제약까지, 완전히 다른 분야를 두 번이나 개척해 정상에 오른 흔치 않은 이력이죠. 유나이티드 테라퓨틱스는 이제 폐동맥고혈압 치료를 넘어, 장기 이식을 기다리다 세상을 떠나는 환자들을 위해 유전자 편집 돼지의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이종장기이식'에까지 도전하고 있습니다. 2022년 세계 최초로 성공한 돼지 심장 이식에 쓰인 심장도 그의 회사에서 나왔어요.
"이식용 장기를 기다리다 세상을 떠나는 환자들을 너무 많이 봤습니다. 그래서 장기를 무한히 공급하는 일에 도전하는 겁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는 물음에, 그의 대답은 늘 같은 곳으로 돌아옵니다. 시작은 언제나 딸을 살리고 싶었던 부모의 마음이었다고요.
사랑은 '불가능'을 깎아내는 힘
마틴 로스블랫의 이야기가 특별한 건, 그가 억만장자라서가 아닙니다. 물론 그는 위성과 바이오라는 첨단 분야에서 성공한, 남다른 자원과 능력을 가진 사람이에요. 하지만 그 모든 성취의 출발점에는 "내 아이를 살리고 싶다"는, 세상 모든 부모가 아는 그 마음이 있었습니다.
진단서 앞에서 주저앉는 대신 의학을 독학하고, 없던 회사를 세우고, "안 된다"는 말을 하나씩 깎아낸 부모. 그렇게 자신의 딸과 수천 명의 낯선 이들을 함께 살려낸 이야기는, 아이를 키우며 새로운 세상과 마주한 우리 모두에게 조용히 말을 건넵니다. 사랑은, 때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가장 강한 힘이라고요.
참고 자료
· Forbes, Martine Rothblatt 프로필(순자산·순위·자수성가 여성)
· Forbes, 역사적 돼지 심장 이식에서 로스블랫의 역할
· Academy of Achievement, Martine Rothblatt 생애·인터뷰
· Wikipedia, Martine Rothbla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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