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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 리 커버

미국 최대 여성 소유 기업 SHI를 세운 두 딸의 엄마, 타이 리

공룡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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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가장 좋은 주차 자리를 마다하고, 매일 아침 직접 운전해 온 뒤 주차장 한복판에 차를 대는 회장이 있어요. 비서도 두지 않아 출장 예약과 일정 관리를 스스로 하고, 신입 직원 바로 옆자리에서 일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이끄는 회사의 연 매출이 15조 원이 넘고, 본인은 미국에서 손꼽히는 자수성가 여성이라면 어떨까요?

주인공은 IT 솔루션·서비스 기업 SHI 인터내셔널(SHI International)의 회장이자 CEO, 타이 리(Thai Lee)예요. 태국 방콕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한국계 미국인이자, 두 딸을 키운 엄마이기도 하죠. 오늘은 화려한 성공담 뒤에 감춰진, 조용하고 단단한 한 엄마의 이야기를 함께 들여다볼게요.

타이 리
타이 리 (사진: Forbes (타이 리 프로필)) · 출처 보기

방콕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아이

타이 리는 1958년 태국 방콕에서 태어났어요. 이름 '타이(Thai)'는 태어난 나라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해요. 부모님은 모두 한국인이었는데, 아버지가 한국의 전후 경제 발전을 세계에 알리던 저명한 경제학자였던 터라 가족은 태국, 독일, 한국, 미국을 오가며 자주 이사를 다녔습니다. 그중에서도 타이 리가 어린 시절 대부분을 보낸 곳은 한국이었어요.

아버지 대니얼 기홍 리(Daniel Kie-Hong Lee)는 1950년 미국 애머스트 대학을 졸업한 최초의 한국인이었습니다. 교육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 아버지의 영향은 네 남매 중 둘째였던 타이 리에게 깊이 스며들었죠. 십 대가 된 타이 리는 언니 마거릿과 함께 미국 매사추세츠주 애머스트로 건너가, 아버지의 모교가 있는 그 동네에서 고등학교를 다녔어요.

물론 유학을 떠날 수 있을 만큼 교육받은 집안이라는 배경은 분명한 출발선의 이점이었어요. 그 점은 솔직히 인정해야겠지요. 다만 이후 그가 걸어간 길은, 그 배경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여동생 셀레스트는 언니를 이렇게 기억해요.

“같이 놀 때도 언니는 늘 우리의 생존을 계획하고 있었어요. 제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집중력이 강한 사람이에요.”

스무 살의 계획, 서른 살의 회사

애머스트 대학에서 생물학과 경제학을 복수 전공한 타이 리에게는 일찌감치 세운 인생 설계도가 있었어요. 그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20대 내내 사업에 관한 모든 것을 배우겠다"는 것, 그리고 서른 살 무렵에는 자기 회사를 운영하겠다는 것이었죠.

계획은 촘촘하게 실행됐어요. 대학 졸업 후에는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한국 기업에서 일했고, 이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1985년 하버드 경영대학원(HBS)을 졸업한 최초의 한국 여성이 됩니다. 이어 프록터앤드갬블(P&G)의 브랜드 매니지먼트 부서와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법인카드 사업부를 거치며, 계획했던 대로 '사업의 모든 것'을 몸으로 익혔어요.

그리고 서른 살을 넘긴 1989년, 마침내 자신의 회사를 갖게 됩니다. 그런데 그 시작은 눈부신 것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타이 리
타이 리 (사진: Wikimedia Commons (CC) · 타이 리가 공부한 하버드 경영대학원) · 출처 보기

100만 달러도 안 되는 회사를 15조 기업으로

1989년, 타이 리는 당시 남편이던 레오 코관(Leo Koguan)과 함께 100만 달러도 안 되는 값에 이름 없는 소프트웨어 리셀러 회사를 인수했어요. 직원이라고는 다섯 명뿐인, 사실상 무너져가던 회사였죠. 두 사람은 이 회사를 소프트웨어 하우스 인터내셔널, 지금의 SHI로 새로 이름 지었습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조용한 반전의 연속이었어요. 화려한 마케팅이나 무리한 투자 유치 대신, 고객을 붙드는 우직함으로 회사를 키웠거든요. 오늘날 SHI는 직원 5,000명 이상, 전 세계 35개 이상의 사무소를 둔 미국 최대 규모의 민간 IT 기업 중 하나로 성장했어요. 연 매출은 약 15조 원(약 140억~150억 달러)에 이르고, 고객 유지율은 99%에 달합니다. 포브스는 일찍이 2012년, SHI를 미국 최대의 여성 소유 기업으로 꼽았어요.

2002년 코관과 이혼한 뒤에도 타이 리는 지분 60%를 지키며 회사를 홀로 이끌었어요. 포브스에 따르면 2026년 기준 그의 순자산은 약 80억 달러, 미국 자수성가 여성 4위에 올랐습니다. 한 해 만에 재산이 20억 달러 넘게 불며 순위도 한 계단 뛰어올랐죠. 2012년에는 언스트앤드영이 선정한 '올해의 기업가'로도 뽑혔고요.

흥미로운 건, 정작 본인은 이런 명성을 반가워하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포브스가 처음 부자 명단에 그의 이름을 올리려 했을 때, 타이 리는 자기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다고 합니다.

두 딸의 엄마, 그리고 주차장 한복판에 차를 대는 회장

타이 리는 두 딸을 키운 엄마예요. 이혼 후 오랫동안 뉴저지주의 같은 집에서 살며, 주 7일을 일할 만큼 회사에 몰두하면서도 삶의 무게 중심은 가족과 일 두 곳에 두었죠. 수십억 달러의 자산가가 된 뒤에도 그의 생활 방식은 놀랄 만큼 그대로였어요.

  • 직접 운전해 출근하고, 주차장 한복판에 차를 댑니다.
  • 비서 없이 출장 예약과 일정 관리를 스스로 해요.
  • 임원용 특별 주차 공간도, 별도의 임원 보상 제도도 두지 않았습니다.
  • 신입 직원 바로 옆의 소박한 사무실에서 일하죠.

이런 검소함은 단순한 절약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향한 태도에서 나온 것이었어요. 그는 회사 문화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에겐 임원 전용 주차장이 없어요. 특별한 임원 보상 제도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스스로 소중하게 여겨진다고 느끼도록 애씁니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뿌리에는 불교의 가르침이 있었다고 해요. 타이 리는 "불교의 근본적인 믿음은, 삶이 본질적으로 고통이라는 것"이라고 말했어요. 어려움을 개인의 실패로 여기기보다 삶에 원래 깃든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기대치를 조절하고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었다는 뜻이죠.

실패해도 괜찮다는, 어느 엄마의 말

방콕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아이, 하버드 최초의 한국 여성, 다섯 명짜리 회사를 미국 최대 여성 기업으로 키운 경영자, 그리고 두 딸의 엄마. 타이 리의 삶은 여러 겹의 이름표를 지나왔지만, 그 밑바닥에 흐르는 태도는 한결같았어요. 묵묵히, 최선을 다해, 그러나 결과에 짓눌리지 않는 것.

여성 창업가들에게 그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실패해도 괜찮아요. 적어도 시도했고, 최선을 다한 거니까요.”

아이를 키우는 하루하루도 어쩌면 그렇지 않을까요. 계획대로 되지 않는 날, 오늘 하루를 망친 것 같은 날에도, 시도했고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말. 세계 곳곳에서 자기 자리를 지켜온 엄마들의 이야기가, 오늘 하루를 살아낸 당신에게도 조용한 응원이 되기를 바라요.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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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라이프#대단한 엄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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