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폐 조기 치료 개입 기관 CARD를 세운 엄마, 도린 그랜피셰
아이의 발달이 또래와 조금 다른 것 같을 때, 부모의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무너졌다 다시 일어섭니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 정보는 넘치는데 정작 우리 아이에게 맞는 길은 잘 보이지 않죠. 그런데 30여 년 전, 바로 그 막막함 앞에서 "그렇다면 내가 직접 만들겠다"고 결심한 한 심리학자가 있었습니다.
자폐 스펙트럼 아동을 위한 조기 개입 기관 CARD(Center for Autism and Related Disorders)를 세운 도린 그랜피셰(Doreen Granpeesheh) 박사입니다. 700제곱피트(약 20평) 남짓한 작은 사무실에서 출발한 그의 도전은 훗날 수백 개 센터로 퍼져 나갔고, 2023년 포브스는 그를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자수성가 여성' 중 한 명으로 꼽았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세 아이를 키운 엄마이기도 합니다.

열여섯 살, 도넛을 튀기며 대학에 다닌 소녀
도린 그랜피셰는 1963년 이란 테헤란에서 태어났습니다. 1978년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했다가 이란 혁명이 일어나면서 미국에 남게 되었고, 캘리포니아의 기숙학교에서 학업을 마친 뒤 그대로 이곳에 정착했습니다. 낯선 언어, 낯선 문화, 곁에 든든한 배경 하나 없는 이민자 소녀에게 미국은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었죠.
그는 열다섯에서 열여섯 살 무렵 UCLA에 입학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도넛 가게에서 도넛을 튀기는 일까지 마다하지 않았어요. 좋은 환경에서 시작한 성공담이 아니라, 맨손으로 자기 삶을 쌓아 올린 이야기라는 점을 우리는 먼저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그의 인생을 통째로 바꾼 건 우연히 신청한 한 수업이었습니다. 저명한 임상심리학자 이바 로바스(Ivar Lovaas) 교수의 '행동 수정(Behavior Modification)' 강의였죠. 자폐 아동과 함께하는 로바스 교수의 연구를 처음 접한 순간,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고 회고합니다.
자폐를 대하는 방식을 바꾼 연구실에서
이후 약 12년간, 학부생에서 석사와 박사 과정에 이르기까지 그는 로바스 교수의 연구실에서 자폐 스펙트럼 아동·성인과 함께했습니다. 특히 1987년에 발표된 기념비적 연구에 참여했는데, 이 연구는 집중적인 응용행동분석(ABA, Applied Behavior Analysis) 조기 개입을 받은 아동 상당수가 뚜렷한 발달 향상을 보였다는 결과를 담아, 자폐를 바라보고 지원하는 방식에 큰 전환점을 만들었습니다.
1984년 학사, 1987년 석사, 1990년 심리학 박사까지. 그의 박사 논문 주제는 "자폐 아동에게 또래 놀이를 가르쳐 상호작용을 늘리는 방법"이었습니다. 아이가 세상과 조금 더 편하게 연결되도록 돕는 것. 그의 관심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았습니다.

700제곱피트에서 시작한 CARD
박사 학위를 받은 1990년, 그랜피셰는 그동안 개인 상담으로 모은 저축을 털어 캘리포니아 엔치노에 약 700제곱피트짜리 작은 임상 공간을 빌렸습니다. 그렇게 CARD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요란한 투자 유치도, 화려한 사무실도 없었어요. 오직 "아이들을 제대로 돕고 싶다"는 마음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성장은 자연스럽게 찾아왔습니다. 그의 활동을 전해 들은 전국의 가족들이 "우리 지역에도 센터를 열어 달라"고 요청하기 시작한 거죠. 입소문을 타고 퍼진 신뢰는 숫자로 증명됐습니다. 2010년대 중반 보험 적용이 확대되면서 CARD는 빠르게 확장했고, 2014년 28개였던 센터가 한때 265개까지 늘어났습니다. 자폐 아동을 지원하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기관으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3억 달러, 그리고 "내 아이를 되찾다"
2018년, 그랜피셰는 글로벌 사모펀드 블랙스톤(Blackstone)에 CARD의 경영권을 넘깁니다. 회사 가치는 약 6억 달러로 평가됐고, 그는 세금 전 기준 약 3억 1,500만 달러의 현금을 손에 쥐었습니다. 헬스케어 분야의 한 여성 창업자가 맨손으로 일군 결실이었죠.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코로나19의 여파와 보험 정산 문제, 인력난이 겹치면서 CARD는 2023년 파산 보호 절차를 밟게 됩니다. 자신이 만든 회사가 무너지는 걸 지켜보던 그랜피셰는 결국 직접 나섰습니다. 투자자들을 모아 약 4,850만 달러에 CARD를 되사들이고, CEO로 복귀한 것입니다. 그가 이 무모해 보이는 결정을 내린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CARD는 제 아이 같은 존재예요. 그냥 사라지게 둘 수는 없었어요."
회사를 판 것을 후회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우주가 우리를 꼭 있어야 할 자리로 데려간다고 믿어요. 다만 지금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아마 CARD를 팔지 않았을 거예요."
2025년 기준 포브스는 그의 순자산을 약 4억 달러로 추정하며,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자수성가 여성'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자수성가 지수는 10점 만점에 8점. 예순셋의 그는 지금도 세 아이의 엄마이자, 자폐 아동을 지원하는 현장의 리더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 아이의 가능성을 믿는 마음으로
도린 그랜피셰의 이야기는 '큰돈을 번 창업가'로만 요약하기엔 아깝습니다. 낯선 나라에서 도넛을 튀기며 대학을 다닌 소녀가, 한 아이 한 아이의 가능성을 믿는 마음을 40년 가까이 지켜 온 여정이니까요. 그리고 그 마음의 뿌리에는 "내가 키운 것을 끝까지 책임지고 싶다"는, 어쩌면 아주 엄마다운 고집이 있습니다.
아이가 남들과 조금 다른 속도로 자라더라도, 그 곁을 지키며 길을 만들어 온 어른들이 세상엔 분명히 있습니다. 그랜피셰의 발자취가, 오늘도 아이의 손을 잡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모든 엄마들에게 작은 응원이 되기를 바랍니다.
참고 자료
대단한 엄마들의 이야기, 더 읽어볼까요?

"나에겐 아이가 잠든 밤과 주방 식탁이 있어." 1조 브랜드를 만든 사업가, 켄드라 스콧

“모든 걸 가질 수 있어도 동시에는 안 돼요” 세계적인 패션기업을 이끄는 네 아이 엄마, 엠마 그레데

두 아이 워킹맘이 1,000억 브랜드를 만들다! Bogg Bag 창업 이야기, 킴 바카렐라
“아이가 가려워하는 모습을 그냥 두지 않았어요” Bug Bite Thing 창업자, 켈리 히그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