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브스 주유소 제국을 세운 네 아이의 엄마 주디 러브
고속도로를 달리다 기름이 떨어질 즈음, 저 멀리 노란 하트 간판이 보이면 어쩐지 마음이 놓이죠. 미국 전역의 운전자들에게 러브스(Love's)는 그런 이름이에요. 화장실도 깨끗하고, 따뜻한 음식과 커피가 있고, 트럭 운전사부터 아이를 태운 가족까지 누구나 잠시 숨을 고르는 곳. 그런데 이 거대한 체인의 시작이, 어린 네 아이를 키우던 한 젊은 엄마의 부엌 식탁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아요.
오늘 만날 주디 러브(Judy Love)는 남편 톰과 함께 작은 시골 주유소 하나로 시작해 42개 주, 650여 개 매장을 거느린 가족기업을 일군 사람이에요. 포브스가 꼽은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자수성가 여성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억만장자이자, 무엇보다 네 아이의 엄마였고요. 오늘은 그가 사업과 육아를 동시에 밀고 나간 방식, 그리고 엄마로서 스스로 깨달은 것들을 함께 들여다볼게요.

5,000달러와 네 아이, 그렇게 시작됐어요
주디는 1937년 시카고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오클라호마시티로 이사했어요. 그곳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톰 러브를 만나 가정을 이뤘죠. 두 사람이 사업을 시작한 건 1964년, 오클라호마주 워탕가의 문 닫은 주유소를 빌리면서였어요. 밑천은 가족에게서 빌린 5,000달러가 전부였고요.
중요한 건, 이때 이미 부부에게는 돌봐야 할 어린 자녀들이 있었다는 점이에요. 통장에 여윳돈이 있어서가 아니라, 키워야 할 아이들이 있었기에 더 절실하게 뛰어든 창업이었죠. 처음엔 '머스킷'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브랜드의 기름을 팔았지만, 1973년 자신들의 성을 내건 '러브스 컨트리 스토어'로 간판을 바꾸며 본격적으로 색깔을 만들어갔어요.
장부를 쥔 사람은 주디였어요
흔히 창업 스토리에서 여성은 '조력자'로만 그려지지만, 러브스의 초기 살림을 실제로 굴린 사람은 주디였어요. 그는 회사의 경리이자 비서로 장부를 관리하고 재무와 운영을 챙겼어요. 낮에는 숫자와 씨름하고, 집에 돌아오면 네 아이를 돌보는 하루가 반복됐죠.
흥미로운 건 그가 1975년에 다시 대학에 돌아갔다는 사실이에요. 회사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젊은 시절 중퇴했던 학업을 이어 실내 디자인을 전공했어요. 사업, 육아, 그리고 자기 공부까지. 어느 하나 포기하지 않으려 한 태도가 이때부터 드러나요. 물론 그 뒤에는 남편 톰과의 단단한 파트너십이 있었어요. 주디는 훗날 "톰이 네 아이에게 자기 인생을 바쳐준 덕분에 엄마로서 제 역할이 한결 수월했다"고 회고했죠.

엄마 노릇이 쉬울 거라는 착각
2020년, 주디는 '오클라호마 올해의 어머니'로 선정됐어요. 그 자리에서 그는 엄마로 산다는 것에 대해 꾸밈없이 털어놨는데, 성공한 사업가의 말이라기보다 우리 곁의 선배 엄마 같은 이야기였어요.
“엄마로서 제가 가장 크게 착각했던 건, 이 일이 쉬울 거라는 생각이었어요. 아이를 키우는 게 그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일이라 여겼거든요. 하지만 제가 배운 건, 아이들의 모든 움직임을 통제하려 하지 않는 것이었어요.”
사업은 숫자와 통제로 굴러가지만, 아이는 그렇지 않다는 것. 네 아이를 다 키운 뒤에야 그는 '통제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고 말해요. 지금 한창 아이의 하루하루를 붙들고 애쓰는 우리에게, 조금 먼저 그 길을 걸어본 사람의 담담한 조언처럼 들리죠.
그가 꼽은 가장 행복한 순간도 인상적이에요. 톰과의 결혼 50주년을 맞아 네 자녀 부부와 아홉 손주가 모두 모여 카리브해에서 닷새를 함께 보낸 여행이었대요. "모든 게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었고, 심지어 비용까지 남이 다 내준" 그 시간을 두고 그는 "오직 엄마만이 이해할 수 있는 기쁨"이었다고 웃으며 말했어요.
42개 주로 뻗어간 가족기업
작은 주유소는 시간이 흐르며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주유·편의 체인 중 하나가 됐어요. 1981년 텍사스 애머릴로에 첫 '트래블 스톱'을 연 뒤, 러브스는 고속도로 곳곳으로 뻗어나갔죠. 주디가 세상을 떠날 무렵 회사는 42개 주, 650여 개 매장, 약 4만 명의 직원을 거느린 규모로 커져 있었어요.
포브스에 따르면 주디 러브의 순자산은 약 131억 달러에 달했고, 그는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자수성가 여성' 명단의 최상위권(2위)에 이름을 올렸어요. 그러면서도 러브스는 상장하지 않고 철저히 가족기업으로 남았어요. 네 자녀 중 프랭크와 그렉은 공동 CEO로, 제니 러브 마이어는 최고문화책임자로 회사를 이끌고 있죠. 부부가 식탁에서 시작한 일이 다음 세대의 손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에요.
주디는 번 돈을 지역사회로 되돌리는 데에도 진심이었어요. 러브스 가족재단 이사장을 맡아 걸스 인코퍼레이티드, 유나이티드 웨이, 오클라호마시티의 여성 병원 건립 모금 등을 이끌었고, 병원과 대학, 예술 기관 곳곳에 그의 손길이 닿아 있어요. 2023년 남편 톰이, 이듬해인 2024년 11월 주디가 87세로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가 남긴 기업과 나눔의 문화는 그대로 이어지고 있답니다.
통제하지 않는 용기가 키운 것들
주디 러브의 이야기에는 분명 우리와 다른 부분이 있어요. 든든한 배우자, 그리고 성공한 사업이라는 토대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 아래에는 누구나 배울 만한 태도가 있어요. 키워야 할 아이들이 있었기에 더 용감하게 일을 벌였고, 장부와 아이 사이를 오가며 어느 것도 놓지 않으려 했고, 끝내는 아이를 통제하지 않는 법까지 배운 한 사람의 긴 여정이요.
일과 육아를 함께 밀고 나가는 오늘의 우리에게, 주디의 말은 조용한 응원 같아요. 완벽하게 통제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아이도 나도 각자의 속도로 자라는 중이라고요. 엄마가 된 뒤의 시간은 멈춘 게 아니라, 또 다른 무언가를 키워내는 성장의 한복판이라는 걸 그의 삶이 보여주고 있어요.
참고 자료
Forbes, "Judy Love & family" 프로필(forbes.com/profile/judy-love) · American Mothers, "2020 Oklahoma Mother of the Year: Judy Love" · Oklahoma Hall of Fame, "Judy Love, Class of 2010" · CSP Daily News·Convenience Store News 부고 기사 · Wikipedia, "Lo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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